
‘포르투행 임박’ 석현준, 예상 포지션과 경쟁자는?
[스포탈코리아] 김다솔 기자= 대한민국의 스트라이커 석현준(24, 비토리아 세투발)의 FC 포르투(이하 포르투)행이 임박했다.
석현준은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치며 경험과 기량을 쌓았다.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에 입단했던 임팩트가 워낙 강렬했지만 그 기세를 잇는 데 실패했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하지만 잠시 잊혀 졌다고 해서 그가 시간을 허투루 낭비한 것은 아니다. 석현준은 성실하게 준비해왔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다.
포르투갈 매체 ‘아볼라’는 5일(현지시간) “FC 포르투가 석현준 영입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계약 기간은 5년이 될 전망이며 며칠 내로 공식 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라 밝혔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클럽 포르투가 석현준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석현준은 공격수라는 포지션에 걸맞게 득점으로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석현준은 현재 리그에서 9득점을 성공했고 이는 리그 3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벤피카의 조나스(13골), 스포르팅의 이슬람 슬리마니(11골)가 그보다 리그에서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석현준은 현재까지 컵 대회를 포함해 19경기에 출전해 11득점에 성공하고 있다. 그의 인기가 치솟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의 포트루행이 성사됐을 때 주전 가능성은 어떨지에 관심이 간다. 포르투는 전통적으로 3명의 공격수를 활용한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중심을 잡고 좌, 우 측면 공격수를 배치시킨다.
포르투의 측면에는 출중한 선수들이 즐비한다. ‘드리블의 귀재’ 야친 브라히미를 비롯해 헤수스 코로나, 실베스트르 바렐라, 크리스티안 테요 등 면면이 화려하다. 다행히 석현준의 위치는 이들과 겹칠 일이 거의 없다.
석현준이 포르투에 입단한다면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를 두고 경쟁할 확률이 크다. 물론 석현준은 오른쪽 측면 공격수도 소화할 수 있다. 허나, 압도적인 제공권과 몸싸움, 볼을 소유하고 동료들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그의 장점을 고려한다면 최전방이 가장 적합하다.
알베르토 부에노와 안드레 실바가 이 위치에 경쟁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활약상은 석현준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현재 포르투의 주전 스트라이커는 빈센트 아부바카(23)다. 아부바카는 리그 14경기에 출전해 6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2015/16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 22경기에 출전해 11득점에 성공했다. 제2의 사무엘 에토라고 불릴 만큼 카메룬의 미래로 평가받고 있는 선수다.
허나, 단순히 득점력만 본다면 석현준이 아부바카에게 밀릴 것이 없다. 다만 아부바카는 석현준과 비교해 기동력과 순발력에 강점이 있다. 석현준이 포르투에 가세한다면, 훌렌 로페테기 감독 입장에서는 상대팀의 성향에 따라 두 선수를 고루 기용할 공산이 크다.
둘의 성향이 다르다는 점은 포르투 입장에서 매력적이다. 여차하면 두 명의 공격수를 모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현준과 아부바카의 조합은 ‘높이’와 ‘속도’의 조화로움을 꾀할 수 있다. 게다가 아부바카는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했을 때 처진 스트라이커 위치를 소화한 경험이 다수 있다.
두 선수가 투톱을 형성해도 좋은 이유는 또 있다. 석현준은 올 시즌 득점뿐 아니라 도움에도 재능을 보이고 있다. 그는 현재까지 리그에서 7개의 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위치가 득점에 다소 치중하는 스트라이커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치다. 이런 조력자 능력은 전술에 다양성을 제공한다. 굳이 3톱을 활용하지 않아도 경우에 따라서는 2톱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포르투가 석현준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그 외에는 크게 석현준이 어려움을 겪을 선수는 없다. ‘백전의 베테랑’ 다니 오스발도는 1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고향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 포르투가 석현준 영입을 서두르는 이유기도 하다. 현재 포르투는 아부바카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스트라이커가 없다. 아부바카의 체력이 걱정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도 하다. 구단 입장에서는 두 선수를 모두 보유해 로테이션을 돌릴 수도 있다.
석현준은 ‘선전수전’을 겪으며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물론 포르투 입단이 모든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입단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하지만 명문 클럽 중 하나인 포르투에 입단한 것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도 한 획을 그을만한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주전이든, 로테이션이든, 투톱 중 하나든 어떤 역할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석현준만의 방식’으로 서서히 진가를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비토리아 홈페이지, 게티이미지코리아
01월06일
리게앙 접수 시작한 디마리아의 ‘한(恨)풀이’
세상은 넓고 선수는 많다. 자연스레 정보는 넘치고 일일이 찾아보기는 귀찮다. 그래서 '스포탈코리아'가 준비했다. 알짜배기들만 골라 탈! 탈! 털어 가진 것을 한 눈에 담았다.
[스포탈코리아]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의 화두는 다름 아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였다.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의 실패로 끝이 난 2013-2014시즌을 뒤로 하고,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새롭게 팀을 꾸려나갔다. 당시 맨유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됐던 루이스 반 할 감독의 영입만큼 세계의 이목을 끈 축구스타는 다름 아닌 앙헬 디 마리아였다.
한 시즌 만에 EPL에서 물러나게 된 ‘아르헨티산’ 특급 공격수의 영국생활은 허무했다. 그가 한 시즌 만에 둥지를 튼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들이 존재했지만 프랑스로 옮긴지 얼마 채 되지 않은 현재,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입증해 보이고 있다. 이번 시즌 프랑스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총 20경기에 나서 9득점 10도움을 기록하고 있는 디 마리아의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았다. 영국 무대에서의 실패가 자신만의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의 저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다.
아르헨티나 CA로사리오 유스 팀에서 본격적인 축구인생을 시작한 디 마리아는 17살의 나이로 1군 데뷔를 이뤄냈다. 2007년까지 아르헨티나에서 활약하다 포르투갈 명문 클럽 벤피카로 둥지를 틀면서부터 오르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포르투갈로 넘어간 해에 참가했던 2007년 U20 캐나다월드컵에서의 활약은 19살인 그를 영입했던 벤피카를 웃게 만들었다. 실제로 그를 향한 조명은 소속팀보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더 많이 비춰졌다.
2008년 이어진 중국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는데 큰 기여를 하며, 2년 연속 국가대항전에서 큰 수확을 얻는다. 당시 리오넬 메시, 세르히오 아구에로, 에세키엘 라베치, 리켈메(와일드카드) 등과 같은 스타선수들과 함께 일궈낸 우승 타이틀은 디마리아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20살이 된 2009-2010시즌부터 소속 팀에서 본격적으로 날개를 피기 시작한다. 젊은 나이에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45경기에서 10득점 19도움을 기록한 그는, ‘꿈의 구단’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2007년 U20 월드컵 우승 멤버들의 활약이 그대로 이어졌던 2008년 올림픽에서의 성과는 스페인으로 가는 길목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부상으로 10경기 가량 출전하지 못했던 2011-2012시즌을 포함한다 해도, 그는 ‘스타군단’ 레알 마드리드에서 꾸준히 중용 받아왔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네 시즌 동안 ‘시즌 당 평균 공격포인트’ 30.75개를 기록하며, 말미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이뤄냈다. 당시 많은 언론들이 ‘숨은 일등 공신’으로 디 마리아를 지목했을 정도로,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특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2013-2014 챔피언스리그 결승 연장전 당시 터졌던 가레스 베일의 역전 골 직전에 있었던 디 마리아의 엄청난 드리블은 모든 관중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끔 만들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기운을 받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 상승세를 이어갔다. 월드컵 결승진출이라는 업적까지 이뤄낸 디 마리아지만, 결승전 당일 오전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되면서 모든 것이 틀어지게 된다. 당시 편지의 내용은 디 마리아의 허벅지 부상이 악화될 것을 염려한 경기 출전 자체 요청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아르헨티나의 입장보다 구단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편지에 폭발한 디 마리아는 “편지를 받자마자 찢어버렸다”며 분노를 표출했었다.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이었던 사베야 감독의 결정으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던 디 마리아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행동은 디 마리아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선수로서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며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편지 사건과 더불어, 재계약 문제로 적잖은 갈등을 빚어왔던 디 마리아는 결국 꿈만 같았던 시절을 뒤로 한 채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5200만 파운드(한화 약 900억원), EPL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 지출 기록이었다. 당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적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어마어마한 변화의 시작을 알린 것은 맨유 뿐만 아니라 디 마리아에게도 해당됐다. 맨체스터에서의 생활은 여러가지 문제로 여러움을 겪었다. 루이스 반 할 감독과의 부조화, 부상 그리고 강도사건까지 여러 일들이 겹치면서 맨유에서의 시즌은 단 한 시즌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한 시즌 부진’은 디 마리아에게 큰 영향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PSG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 지출 2위’에 등극하며 파리로 넘어온 그는 이번 시즌에만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리그 내 각종 수치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한 디 마리아의 현재 페이스는 맨유에서의 부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의심이 가는 대목이었다. ‘MOM횟수’, 도움 수, 경기당 키패스 회수에서 프랑스 리그 앙 최고의 수치를 기록 중이고, 평점과 경기당 크로스 성공률은 리그 내 2위를 달리고 있었다.
리그 차이를 떠나서, 디 마리아가 첫 시즌 만에 보여주는 활약은 자신이 ‘월드 클래스’라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입증하는 대목이었다.
레알에서 맨유로, 맨유에서 PSG로 이동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디 마리아의 행보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첫 시즌 만에 프랑스를 ‘접수’하기 시작한 디 마리아의 클래스는 자신에게 맞는 옷만 입혀준다면, 그 어느 리그를 가더라도 자신의 진가를 입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글, 그래픽 = 노영래기자
01월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