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는 국내에서도 푸마 축구화를 애용하는 선수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1948년 루돌프 다슬러에 의해서 창업된 푸마는 1960년대부터 아디다스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계 축구화 시장을 양분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우 이미 1970년대부터 푸마 축구화를 신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그 무렵까지 푸마의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1970년대에 국내에서 푸마 축구화를 착용한 선수는 눈에 띄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서 국내에 푸마 축구화를 신고 활약하는 선수가 한 명 등장했는데 그가 바로 현 제주FC 감독인 박경훈이다. 필자의 기억에 국내 유명 선수 가운데 푸마 축구화를 가장 먼저 착용한 인물은 박경훈 감독이 아닌가 싶다.
박경훈은 1970년대 말, 변병주-백종철-백치수와 함께 ‘청구고 4인방’으로 불리우며 고교 축구계를 주름 잡았고, 한양대학교 2학년 때인 1981년에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1981년에 벌어진 스페인 월드컵 아시아 지역에서 탈락한 후, 그 해 몇몇 선수들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는데 그 중에는 붙박이 오른쪽 사이드백 최종덕도 포함돼 있었다. 박경훈은 최종덕이 떠난 대표팀 오른쪽 사이드백 자리를 꿰차며 악착 같은 수비와 탁월한 스피드에 이은 공격가담으로 축구 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 잡았다.
당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주로 독일제 아디다스와 일본제 아식스 축구화를 즐겨 신었는데 박경훈은 대표팀 신인 시절 푸마를 신고 뛰었다. 박경훈이 푸마 축구화를 착용한 기간은 짧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필자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았다.
박경훈 이후에 푸마 축구화를 착용한 유명 선수는 노정윤이다. 1993년 일본 J리그로 진출한 노정윤은 산프레체 히로시마 시절 한동안 푸마 킹 톱(King Top)을 신었다. 1980년대 박경훈, 1990년대 노정윤에 이어 2000년대에는 안정환이 푸마를 애용했다.
안정환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검정색 가죽에 주황색 마크가 새겨진 푸마 축구화(프레스토)를 신고 조별 예선 미국전과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골을 터뜨리는 등 이 대회에서 맹활약하며 한국의 4강 신화에 큰 공헌을 했다. 안정환은 2006년 독일 월드컵에도 참가해 조별 예선 토고전에서 후반전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한국의 2-1 승리를 이끌어 냈다. 안정환은 독일 월드컵에서도 흰색 푸마 축구화(레서바)를 착용했다
편집자주 푸마는 2000년대 후반 기술이 좋은 선수들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됐다. 이관우와 송종국 그리고 이천수까지 푸마를 착용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젊은 선수들이 푸마를 애용하고 있다. 김보경, 서정진, 하대성 등 전도유망한 선수들이 푸마 축구화를 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