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화의 자존심 키카
2010.11.02 14:01:15


지금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축구화 가운데 선수들과 매니아들이 가장 많이 애용한 제품은 아마도 키카일 것이다. 키카 축구화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10여년 동안 국내 축구화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1981년 설립된 삼광 스포츠사는 당시 소규모로 수제 축구화를 제작,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그 제품이 바로 키카였다. 1983년 효창구장 인조잔디 포설 기념으로 아르헨티나 청소년 대표팀과 브라질의 명문 클럽 플라멩구가 내한해 멕시코 청소년 대회 4강 신화를 이룬 한국 청소년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가졌을 때 키카가 이 대회 공식 스폰서를 맡으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1980년대 초까지 국내 축구화의 선두 주자는 단연 서경(西京)과 정신(正信)이었다. 그런데 후에 키카와 프로스펙스가 등장하면서 서경(西京)과 정신(正信)은 뒤로 처졌고 키카와 프로스펙스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당시 프로스펙스는 대표팀 선수들에게 물품 지원 및 후원금까지 지급하는 등, 통 큰 전략으로 키카에 우위를 점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대표팀 선수들 일부가 프로스펙스를 착용하면서 상당한 광고 효과도 얻었다.

하지만 키카의 저력도 대단했다. 키카는 TV 광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지도 면에서는 프로스펙스에 뒤졌지만 프로 리그에서 활약하는 많은 선수들이 키카 축구화를 신었고, 학생 선수들과 조기 축구회 동호인들도 키카 축구화를 애용했다. 특히 아마추어 선수들이 효창구장을 비롯한 인조 잔디 구장에서 경기를 치룰 때는 95% 이상이 키카 축구화를 착용했다.

당시 키카는 대중적인 인지도에서만 프로스펙스에 뒤졌을 뿐이지 축구인들과 매니아들 사이에선 오히려 프로스펙스 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90년 이후부터 프로스펙스의 인기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키카의 독주 체제가 시작됐다.

키카 축구화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권 나라에까지 입소문이 났는데 특히 중동권 선수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무렵 중동권 국가 선수들이 한국에 경기를 치르러 오면 반드시 동대문 운동장 주변 축구용품점과 체육사에 들러 키카 축구화를 대량으로 구입해 갔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 선수들 여러 명이 키카 축구화를 착용했다.

국내 유명 선수들 가운데도 키카 축구화를 신고 멋진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이 많았다. 1985년 대통령배 국제 축구 대회를 통해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88팀의 에이스 김주성이 당시 키카 축구화를 신고 맹활약했고, 1993년 호주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에 출전한 한국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 일부가 그 대회에서 키카 축구화를 신고 뛰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때는 대표팀 주전 스토퍼 최영일이 키카 축구화를 착용했다. 키카는 외제 축구화 보다 가격이 저렴할뿐더러 질적인 면에서도 외제 축구화와 비교해 결코 뒤떨어지질 않았기 때문에 당시 프로 선수들도 많이 선호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나이키-아디다스-미즈노 등의 외제 축구화가 대중화 되면서 키카가 과거와 같은 인기를 누리진 못하지만 국내 축구화 가운데는 여전히 최고의 위치를 자랑하고 있다. 물론 디자인과 기능면에서 외국 상품들과 겨루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 많은 투자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