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일본인' 라모스와 아식스 축구화
2010.10.04 12:29:09


일본 성인 선수들의 경우, 예나 지금이나 자국 제품인 아식스 축구화 보다 타브랜드 축구화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던 ‘전설의 센터포워드’ 카마모토 쿠니시게는 현역 시절에 아디다스 축구화를 주로 신었고, 1980년대 ‘프리킥의 마술사’로 각광 받았던 키무라 카즈시도 푸마와 아디다스를 즐겨 신었다. 1990년대 일본 최고의 축구 스타였던 미우라 카즈요시도 지금까지 푸마를 착용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아식스 축구화의 열혈 애용자가 한 명 있었다. 바로 라모스 루이다.

일본 축구가 한국 축구를 위협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부터다. “한국을 넘지 못하면 세계로 진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일본 축구계는 1990년대 들어서 ‘타도 한국!’을 더욱 크게 부르짖었는데 그 선봉에 브라질 출신의 미드필더 라모스 루이가 있었다.

1957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태어난 라모스는 만 19세 때인 1977년에 지인의 권유로 일본 요미우리 클럽에 입단했다. 그 무렵 일본은 비록 아마추어였지만 실업팀을 1, 2부로 나누어 ‘일본 리그’를 실시하는 등 체계적인 시스템을 운용했고, 각 팀에는 외국인 선수들도 한 두 명씩 소속돼 있었다. 라모스는 1979년 일본 리그에서 득점왕과 도움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일본 축구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당시 라모스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요미우리 클럽 기술 고문으로 부임한 디노 사니로부터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라”는 조언을 끊임없이 들으며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고, 이후 미드필더로 전향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디노 사니는 브라질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스타 출신의 지도자다.

1984년 일본인 여성 하츠네와 결혼한 라모스는 1989년 일본으로 귀화했고, 이듬 해인 1990년에 일본 대표팀에 발탁됐다. 당시 브라질 축구 유학을 끝마치고 돌아온 미우라 카즈요시도 일본 대표팀에 발탁돼 두 선수가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1991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벌어진 한-일 정기전에서 한국이 하석주의 결승골로 일본을 1-0으로 이겼는데, 이날 라모스와 카즈가 풀타임으로 출전해 한국 선수들과 축구팬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이 경기에서 한국이 1-0으로 승리했지만 라모스-카즈가 합류한 일본의 전력은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1992년 8월 중국 북경에서 벌어진 다이너스티컵 예선전에서 0-0으로 비긴 한국과 일본은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 치열한 접전 끝에 2-2 무승부를 기록한 후 승부차기에서 일본이 4-2로 승리를 거두었다. 사기가 오른 일본은 3개월 후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대회에서 라모스는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다. 라모스의 경기 조율 능력과 패스의 정확도는 탈아시아급이었다.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벌어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치욕적인 0-1 패배를 당했는데 그 날 일본의 득점자는 카즈였지만 득점의 시발점은 다름아닌 라모스였다. 라모스는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한국 대표팀과 4차례 맞붙어 2승1무1패를 기록했는데,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한국 대표팀은 ‘라모스가 뛴’ 일본 대표팀에게 크게 고전했다.



라모스는 대표적인 아식스 축구화 애용자였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아디다스 축구화도 착용했으나 1993년 J리그가 출범된 후부터 1998년 은퇴할 때까지 줄곧 아식스 축구화 만을 고집했다.

요미우리 베르디가 1993년과 1994년에 연거푸 J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때 라모스가 신었던 모델은 Ramos2000이라는 제품이었다. 검은색 가죽에 노란색 아식스 마크가 새겨진 Ramos2000은 당시 아식스사에서 라모스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모델이었다.

라모스는 고무 재질로 된 고정식 스터드 축구화를 선호했는데 수중전일 때도 변함없이 같은 축구화를 신고 뛰었다.

한편, 라모스는 일본에 대한 애국심이 강한 걸로도 정평이 나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 대표팀 유니폼에도 일장기가 새겨져 있었으나 그 후에는 일장기대신 일본 축구 협회 마크를 새겨 넣었다. 그러나 라모스가 일본 대표팀에 발탁된 후 다시 유니폼 왼쪽 팔 부분에 일장기를 새겨 넣었는데 라모스의 제안으로 행해졌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