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골이 없던 선수라니까? 그런데 벌써 3골이야.”
전남 드래곤즈의 박항서 감독은 2010년 상반기에 새로운 해결사의 등장에 웃었다. 박 감독을 웃게 만드는 주인공은 전남의 프로 5년 차 미드필더 백승민(24)이다. 2라운드에서 울산을 상대로 선제골을 터트렸던 백승민은 3라운드 대구전에서는 전반 시작 44초 만에 골을 기록한 데 이어 22분에는 헤딩 골을 추가하며 팀의 3-0 완승을 이끌었다. 백승민은 전반기에만 세 골과 두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만점 활약을 펼쳤다.
▲ 4년 간 한 골도 없던 선수가 득점 1위까지
2006년 프로에 데뷔한 백승민은 지난해까지 K-리그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4년 간 도움만 세 개를 기록했던 그가 올해 벌써 세 골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백승민은 한 때 파브리시오, 몰리나(이상 성남), 루시오(경남), 팀 동료 인디오와 함께 득점 공동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백승민 자신도 당시에는 머쓱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백승민은 172cm, 66kg으로 체구는 작지만 기둥력이 뛰어나 박항서 감독이 중앙 미드필더로 선호한 선수다. 하지만 공격력에 대한 기대는 걸지 않았다. 공간 침투 능력이 좋아 기회는 종종 얻지만 마무리가 늘 2% 부족했다. 때문에 백승민의 주 역할은 허리에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상대팀의 주요 공격수를 미리 마크하는 것이었다. 각급 청소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지만 공격력 부족으로 경쟁자들에게 밀려 늘 본선 직전에 탈락하며 눈물을 흘렸던 아픔도 있다.
하지만 올 시즌 백승민은 상대 페널티 박스 안으로 더 과감하게 침투한다. 마치 섀도우 스트라이커를 보는 듯하다. 과거 한 경기에 슈팅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던 그가 올 시즌은 개막 후 세 경기에서 일곱 차례 슈팅을 시도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여기에 결정력까지 더해졌다. 울산전 득점은 흘러나온 공을 그대로 때린 것이 크게 바운딩되며 상대 골문을 흔들었다. 대구전에서는 윤석영이 올려준 크로스를 오른발과 헤딩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 특수 깔창으로 부상 줄이고, 수당으로 의욕 올리고
백승민의 드라마틱한 변신을 이끈 비결은 세 가지다. 우선은 과학적 보조다. 현재 백승민은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 등 유명 선수들이 쓰는 특수 맞춤 깔창을 축구화에 사용하고 있다. ‘컨퍼머블 인솔’로 불리는 이 기능성 깔창은 선수의 발을 견고하게 받쳐줌으로써 안정감을 제공한다. 특히 양발의 밸런스를 맞춰줌으로써 부상을 예방하고 체력 부담을 감소시킨다. 작년 한해에만 피로 골절과 스포츠 헤르니아 판정을 받는 등 부상이 잦았던 백승민은 “에이전트의 추천으로 맞춤 깔창을 쓴 뒤 밸런스가 좋아졌다. 부상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면서 플레이에 더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음은 훈련양이다. 매년 부상 여파로 동계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예년과 달리 부상 없이 올 겨울 훈련을 충실히 소화했다. 백승민은 매일 팀 훈련이 끝난 뒤 슈팅에 일가견이 있는 김명중과 함께 따로 30분씩 개인 연습을 실시하며 골 결정력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박항서 감독은 “워낙 활동 반경이 넓고 공간으로 빠져 들어가는 능력이 좋아서 한 경기에 두 번 정도의 찬스를 잡는데 이상하게 골을 못 넣었다. 겨울 동안 그 부분을 해결하라고 주문했는데 본인이 잘 준비했다”며 백승민의 노력을 칭찬했다.
마지막은 수당. 애초에 골과 인연이 없었던 탓에 백승민은 외국인 공격수와 팀 내 핵심 선수들이 체결하는 골 수당을 한번도 맺은 적이 없다. 그랬던 백승민이 지난해 재계약 당시 “동기 부여가 주어지면 더 열심히 할 것 같다”는 얘기와 함께 골 수당을 넣어줄 것을 요청했다. 구단 측에서는 ‘어차피 골을 못 넣는 선수니 사기 진작 차원에서 넣어주자’라는 생각에 골 수당을 옵션으로 넣었는데 결과는 대박이었다. 구단의 한 관계자는 “승민이가 그 동안 일부러 골을 안 넣었던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라며 웃어 보였다.
백승민은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를 떠올리며 득점에 대한 의지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 그는 성남과의 챔피언십 준플레이오프 당시 후반 막판 중앙 침투에 의해 골키퍼와의 1대1 단독 찬스를 맞았지만 이를 놓쳤고 전남은 0-1로 패해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눈 앞에서 놓쳤다. 올 시즌 5골을 넣는 것이 목표였다던 백승민은 “벌써 목표치의 50%를 돌파해버렸다. 첫 골이 일찍 나오면서 자신감이 올라갔다. 팀 내 최다 득점을 노려보고 싶다”라며 상향 조정된 목표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