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를 꿈꾸는 남자, 미즈노 기획자 야마구치

축구화는 작은 우주다. 각각의 축구화는 수많은 고민의 결정체이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철학을 구현하려 한다. 선수에게 최상의 경기력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축구화에 숨결을 불어넣는 한 남자가 있다. 미즈노(MIZUNO)의 축구화 기획자인 마사토시 야마구치씨는 완벽한 축구화를 꿈꾼다.

“축구화를 만들려면 기술이 있어야 할 텐데, 전공은 어느 쪽이신가요?”라는 <올댓부츠>의 천진스런 질문에 웃음이 돌아온다. 마사토시 야마구치 씨는 온화한 표정으로 축구화 기획자에 대한 정의부터 확실히 했다. 그는 “신발 자체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기획을 하는 거예요. 디자이너, 기술자들과 함께 일합니다”라고 차분히 설명했다.

그렇다. 야마구치 씨는 축구화를 제작하는 기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공을 했다. 그는 영업사원으로 시작했다. 그는 J리그 태동(1993년)을 코앞에 두고 1992년 사세를 확장하던 미즈노에 입사해 10년 정도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한 번의 전환이 있었다. 미즈노는 10년 정도 일한 직원들을 상대로 FA제도(보직을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시행하고 있었고, 야마구치씨는 기획자에 지원했다. 좋은 축구화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 선수로 뛰기도 했고, 지금도 동호회 활동을 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관심 있는 축구화 기획자 분야에 응모했고, 발탁된 거죠. 전공은 상관없습니다.”

축구화 기획자가 된 야마구치 씨는 처음부터 새로운 축구화를 만드는데 투입되진 않았다. 그는 기존 미즈노 모델들을 가다듬어 세련되게 하는 일로 시작했다. 야마구치 씨의 일은 기존 축구화에 대한 선수 그리고 사용자들의 의견을 듣고, 모으고,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얻어진 결과를 가지고 미즈노의 기본인 ‘경량성, 맨발 감각, 유연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전에 출시된 제품의 단점을 보완한 축구화를 만들어냈다.

“축구화를 만들 때는 일단 머릿속에 가설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합니다. 세워진 가설 속에서 만들어진 축구화를 선수들에게 신기는 거죠. 그리고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선수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해요. 말과 행동이 다를 때도 있거든요. 과학적인 측정을 통해서 최적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상태를 찾아내는 겁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경험과 경력을 쌓은 그에게 새로운 일을 줬다. 클래식한 모렐리아 라인이 아닌 ‘파워 컨셉(강력한 슈팅을 기능으로 하는)’의 축구화를 만들라는 지시였다. 야마구치 씨는 ‘파워 컨셉’의 삼촌쯤 되는 ‘어드밴스드(ADVANCED) 라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새로운 그림을 머리에 그렸다.

“모렐리아 라인이 선수의 능력을 100% 발휘하게 하는 축구화라면, 파워 라인은 선수의 능력을 150% 정도 끌어낼 수 있는 제품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파워 컨셉의 신발은 딱딱하다는 불평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착용감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발가락을 위로 올리면 축구화가 따라 구부러질 수 있도록 했죠. 스터드가 (잘 구부러지도록) 홈을 팠고, 밑창(아웃솔)에도 탄력을 줬습니다. 웨이브 패넬(마찰력이 큰 소재로 공의 회전을 돕는 부분)이 겹쳐서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참고했다. 뛸 때도 패넬이 전혀 겹치지 않아요.”

이런 제련 과정 끝에 만들어진 것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새롭게 출시된 미즈노의 야심작 웨이브 이그니터스(WAVE IGNITUS)다. 야마구치 씨와 미즈노의 개발팀이 만들어낸 작품은 벌써 호평을 받는다. J리그 선수들과 고등학교 선수들에게 출시에 앞서 평가를 의뢰했고, 좋은 메아리를 들었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파라과이의 미남 스타 호케 산타 크루스와 일본의 혼다 케이스케 그리고 한국의 김형일이 웨이브 이그니터스를 착용할 예정이다.

치밀한 준비 끝에 수작(秀作)을 만들어냈지만, 야마구치 씨의 꿈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신었을 때 착용감에 만족할 수 있는 축구화를 만들고 싶어요. 한 사람이라도 더 만족할 수 있는 축구화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 해야죠. 기술, 기능 그리고 디자인을 모두 생각해야 합니다.”

최근 화두는 경량성이다. 90분의 시간 동안 선수들이 평균 10km 이상을 뛰는 현대축구 상황에서 가벼움은 필수 조건이다. 완벽한 축구화를 위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0~20년 전과 비교하면 경기 양상이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90분 내내 뛰고 또 뛰는 선수들에게 무거운 축구화는 형벌과 같아요. 결국에는 가볍게 만드는 것이 모두의 숙제가 됐죠. 하지만, 그저 가볍게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장점이 두드려지는 축구화를 만들어야 해요. 가볍지만 무거운 축구화만큼의 안전성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벼워진 대신에 단점이 많아진다면 의미가 없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경량성 위에 편안한 착용감을 두는 일이에요.”

그는 인터뷰 끝에 미즈노에 입사해 세계 최고의 축구화 기획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한국의 후배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그가 강조한 것은 시류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눈이었다. 나무 한 그루에 집중하기보다는 숲 전체를 보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을 바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적 감각이라고 할까요. 축구화 시장은 매우 큽니다. 유럽, 남미,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언어 능력도 필요하겠죠. 그리고 미즈노라는 회사를 정말 사랑하고 좋아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죠. 저도 전공자가 아니었어요. 열정을 가지고 지원하시면 축구화 기획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준비한 질문을 모두 던지고도 <올댓부츠>는 쉽사리 인터뷰를 마치지 못했다. 야마구치 씨가 질문 공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표본이라도 채취하려는 듯이 전 방위 질문 그물을 쳤고, 진지하게 들으면서 메모까지 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 신어보지도 않은 웨이브 이그니터스에 대한 신뢰가 일었다. 좋은 축구화도 좋은 기술도 결국에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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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를 꿈꾸는 남자, 미즈노 기획자 야마구치
2010.02.23 09:22:27
축구화는 작은 우주다. 각각의 축구화는 수많은 고민의 결정체이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철학을 구현하려 한다. 선수에게 최상의 경기력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축구화에 숨결을 불어넣는 한 남자가 있다. 미즈노(MIZUNO)의 축구화 기획자인 마사토시 야마구치씨는 완벽한 축구화를 꿈꾼다. “축구화를 만들려면 기술이 있어야 할 텐데, 전공은 어느 쪽이신가요?”라는 <올댓부츠>의 천진스런 질문에 웃음이 돌아온다. 마사토시 야마구치 씨는 온화한 표정으로 축구화 기획자에 대한 정의부터 확실히 했다. 그는 “신발 자체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기획을 하는 거예요. 디자이너, 기술자들과 함께 일합니다”라고 차분히 설명했다. 그렇다. 야마구치 씨는 축구화를 제작하는 기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전공을 했다. 그는 영업사원으로 시작했다. 그는 J리그 태동(1993년)을 코앞에 두고 1992년 사세를 확장하던 미즈노에 입사해 10년 정도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한 번의 전환이 있었다. 미즈노는 10년 정도 일한 직원들을 상대로 FA제도(보직을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시행하고 있었고, 야마구치씨는 기획자에 지원했다. 좋은 축구화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축구 선수로 뛰기도 했고, 지금도 동호회 활동을 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관심 있는 축구화 기획자 분야에 응모했고, 발탁된 거죠. 전공은 상관없습니다.” 축구화 기획자가 된 야마구치 씨는 처음부터 새로운 축구화를 만드는데 투입되진 않았다. 그는 기존 미즈노 모델들을 가다듬어 세련되게 하는 일로 시작했다. 야마구치 씨의 일은 기존 축구화에 대한 선수 그리고 사용자들의 의견을 듣고, 모으고,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얻어진 결과를 가지고 미즈노의 기본인 ‘경량성, 맨발 감각, 유연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전에 출시된 제품의 단점을 보완한 축구화를 만들어냈다. “축구화를 만들 때는 일단 머릿속에 가설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합니다. 세워진 가설 속에서 만들어진 축구화를 선수들에게 신기는 거죠. 그리고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선수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해요. 말과 행동이 다를 때도 있거든요. 과학적인 측정을 통해서 최적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상태를 찾아내는 겁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경험과 경력을 쌓은 그에게 새로운 일을 줬다. 클래식한 모렐리아 라인이 아닌 ‘파워 컨셉(강력한 슈팅을 기능으로 하는)’의 축구화를 만들라는 지시였다. 야마구치 씨는 ‘파워 컨셉’의 삼촌쯤 되는 ‘어드밴스드(ADVANCED) 라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새로운 그림을 머리에 그렸다. “모렐리아 라인이 선수의 능력을 100% 발휘하게 하는 축구화라면, 파워 라인은 선수의 능력을 150% 정도 끌어낼 수 있는 제품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파워 컨셉의 신발은 딱딱하다는 불평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착용감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발가락을 위로 올리면 축구화가 따라 구부러질 수 있도록 했죠. 스터드가 (잘 구부러지도록) 홈을 팠고, 밑창(아웃솔)에도 탄력을 줬습니다. 웨이브 패넬(마찰력이 큰 소재로 공의 회전을 돕는 부분)이 겹쳐서 불편하다는 이야기도 참고했다. 뛸 때도 패넬이 전혀 겹치지 않아요.” 이런 제련 과정 끝에 만들어진 것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새롭게 출시된 미즈노의 야심작 웨이브 이그니터스(WAVE IGNITUS)다. 야마구치 씨와 미즈노의 개발팀이 만들어낸 작품은 벌써 호평을 받는다. J리그 선수들과 고등학교 선수들에게 출시에 앞서 평가를 의뢰했고, 좋은 메아리를 들었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파라과이의 미남 스타 호케 산타 크루스와 일본의 혼다 케이스케 그리고 한국의 김형일이 웨이브 이그니터스를 착용할 예정이다. 치밀한 준비 끝에 수작(秀作)을 만들어냈지만, 야마구치 씨의 꿈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신었을 때 착용감에 만족할 수 있는 축구화를 만들고 싶어요. 한 사람이라도 더 만족할 수 있는 축구화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 해야죠. 기술, 기능 그리고 디자인을 모두 생각해야 합니다.” 최근 화두는 경량성이다. 90분의 시간 동안 선수들이 평균 10km 이상을 뛰는 현대축구 상황에서 가벼움은 필수 조건이다. 완벽한 축구화를 위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0~20년 전과 비교하면 경기 양상이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90분 내내 뛰고 또 뛰는 선수들에게 무거운 축구화는 형벌과 같아요. 결국에는 가볍게 만드는 것이 모두의 숙제가 됐죠. 하지만, 그저 가볍게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장점이 두드려지는 축구화를 만들어야 해요. 가볍지만 무거운 축구화만큼의 안전성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벼워진 대신에 단점이 많아진다면 의미가 없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경량성 위에 편안한 착용감을 두는 일이에요.” 그는 인터뷰 끝에 미즈노에 입사해 세계 최고의 축구화 기획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한국의 후배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그가 강조한 것은 시류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눈이었다. 나무 한 그루에 집중하기보다는 숲 전체를 보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을 바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적 감각이라고 할까요. 축구화 시장은 매우 큽니다. 유럽, 남미,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언어 능력도 필요하겠죠. 그리고 미즈노라는 회사를 정말 사랑하고 좋아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죠. 저도 전공자가 아니었어요. 열정을 가지고 지원하시면 축구화 기획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준비한 질문을 모두 던지고도 <올댓부츠>는 쉽사리 인터뷰를 마치지 못했다. 야마구치 씨가 질문 공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표본이라도 채취하려는 듯이 전 방위 질문 그물을 쳤고, 진지하게 들으면서 메모까지 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 신어보지도 않은 웨이브 이그니터스에 대한 신뢰가 일었다. 좋은 축구화도 좋은 기술도 결국에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