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 피운 꽃, FILA 축구화
2009.11.23 12:06:43


21세기 축구화 시장은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그리고 미즈노 등 몇몇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밝혔던 것처럼 20세기에는 축구화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였다. 많은 브랜드들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혹은 성공하고 더러는 실패를 맛봤다. FILA도 마찬가지였다.

FILA는 1911년 이탈리아의 FILA 형제가 창업한 회사로서 초창기에는 알프스 지역 사람들에게 적합한 의류를 주로 생산했다. 이후 1970년대 초에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에 인수된 FILA는 모터 스포츠 유니폼 및 테니스 종목으로 진출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급기야 1990년대 중반 축구 종목에도 손을 뻗쳤다.

그러나 FILA는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인지도는 높았지만 축구 쪽에서는 매우 낯선 브랜드였다.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세계적 스타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야 했고, 확실한 전략이 필요했다. 즉, 세계적 선수들에게 FILA 축구화를 착용케 해야 했다.

그 무렵 FILA 축구화를 신은 유명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시니사 미하일로비치(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세바스티안 베론(아르헨티나), 나카타 히데토시(일본), 클라우디오 레이나(미국). 하나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이다.

잘 알려진대로 미하일로비치는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겸하는 선수로서 1990년대 세계 최고의 프리킥커 중 한 명이었다. 레오스타 베오그라드에서 1992년 이탈리아 SERIE-A AS로마로 이적한 미하일로비치는 이후 삼프도리아-라치오-인터 밀란 등을 거치며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 그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에 FILA 축구화를 신고 출전해 조별 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 시켰다.

탁월한 패스 센스를 자랑하는 베론 역시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FILA 축구화를 신고 출전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아르헨티나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적인 선수였던 베론은 특히 롱패스 정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미드필더 나카다는 1990년대 초~중반까지 나이키를 애용하다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전,후로 FIlA 축구화를 신었다.

그러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FILA 축구화를 착용하는 선수는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기능성은 알 길이 없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최고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FILA 축구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로고였는데 대부분의 축구화 로고는 라인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서 FILA는 축구화 양 측면에 ‘F’자를 크게 새겨 넣었다. 타브랜드에 비해서 독특한 디자인이었지만 투박하다는 평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최근까지 FILA축구화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성인용이 아니라 FILA의 이름만 쓰고 있는 형식으로 아동용 축구화가 나오고 있다.

필자인 김유석은 어린 시절 수없이 효창 운동장 담벼락을 넘었던 진정한 사커 키드다. 모두 대통령을 꿈꾸던 시절 홀로 차범근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이가 바로 그다. 축구를 풍성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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