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즌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즌이 시작하기까지 축구계는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불타오른다. 세계 유수의 클럽들이 실력과 상품성을 두루 갖춘 선수들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언론들은 연일 쏟아지는 소문 중에서 진짜 첩보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팬들은 구단과 언론이 한데 어우러져 그리는 그림을 보고 환호와 비난을 보낸다.
하지만 축구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물론 축구화를 만들고 판매하는 제조사 입장에서는 전쟁이지만, 축구화 마니아들에게는 선수의 팀 간 이적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 축구화 이적 시장이다. 어떤 선수가 어느 모델을 신었는가와 혹시나 스폰서를 갈아탄 선수는 없는지, <올댓부츠>를 비롯한 마니아들은 선수들의 발을 주시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가장 흥미진진했던 것은 조원희의 발이었다. 조원희는 아디다스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위건 애슬래틱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그는 공항에서 보란듯이 나이키 로고가 크게 박힌 티셔츠를 입고 출국 인터뷰를 했다. 이후 나선 경기에서도 나이키 축구화를 신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포포투> 인터뷰 때문에 만난 그는 사진 촬영 전에 옷을 갈아 입겠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전속 계약을 맺을 때, 사진 촬영 시에는 되도록이면 브랜드를 노출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서약을 한다) 그런데 그가 갈아 입은 티셔츠는 놀랍게도 아디다스였다. 그새 다시 계약을 맺었던 것이다.
금새 스폰서 계약을 채결한 조원희의 대답은 더 재미있다. 그는 잉글랜드에서 ‘먹어주는’ 브랜드가 아디다스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조원희는 “아디다스가 잉글랜드 분위기와 맞아요. 아주 예쁘거나 화려한 것은 아닌데 뭔가 진정하고 믿음직스러운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잉글랜드 선수들은 아디다스를 많이 신어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일화로는 ‘존 테리 파동’을 들 수 있다. 테리는 엄브로의 전속 계약 모델로 이번에 새로 출시된 스페셜리를 신고 멋진 광고 사진을 찍은 인물. 하지만 테리는 지난 7월 말 미국에서 열린 인터 밀란과의 경기에서 놀랍게도 아디다스의 아디퓨어 2(검은색-흰색)을 신고 나섰다.
경기를 지켜보던 에디터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아디다스에서 거액을 들여 테리를 영입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까지 들었다. 하지만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영국의 축구화 전문사이트 <풋티-부츠>는 엄브로 쪽의 공식 반응을 정했다. 뉴 스페셜리로의 교체가 늦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연습 때 신던 축구화를 신게 됐다는 것이다.
엄브로 측에서는 불을 재빨리 끄기 위해서 “우리는 직접 테리와 충분한 대화을 나눴으며 이제부터는 뉴 스페셜리를 신고 경기에 나설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디다스는 짐짓 즐거운 눈치다. 아디다스는 “테리가 왜 아디퓨어2를 신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제품은 매우 좋은 클래식 가죽 축구화임에는 틀림없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더라도 양상은 비슷했을 것이다. 한 쪽의 마케팅 담당자는 진땀을 흘리며 선수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기자들의 전화를 받으며 여유 있는 미소를 흘렸을 것이다. 비슷한 경우에 모 업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었다. 그는 “그런건 어떻게 봤어요.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라며 당혹감을 표시했었다.
유럽의 이적시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축구화 제조사들의 축구화 전쟁도 한창이다. 과연 이번 여름 축구화 자유 계약으로 풀린 선수들과 대어급 선수들은 어떤 축구화를 신게 될까? 당사자들은 속이 타겠지만, 우리는 축구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