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 후반 아시아 최정상급 미드필더로서 맹활약했던 일본의 나나미 히로시. 현역 시절 그의 왼발에서 뿜어나오는 날카로운 패스는 천하일품이었다. 그의 ‘킬러 패스’는 라이벌인 대한민국 대표팀에게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일본 축구 전문가들은 나나미 히로시와 나카다 히데토시, 둘을 놓고 이렇게 평한다. "종합적인 면에선 나카다가 앞서지만 '나나미의 왼발'과 '나카다의 오른발'을 비교했을 때는 나나미의 왼발이 한수 위!“라고 입을 모은다.
탁월한 경기 조율 능력과 섬세한 패싱력을 자랑했던 나나미이기에 축구화를 고를 때도 신중을 기하고 또한 최고급 모델을 신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뜻밖에도 나나미는 축구화에 그다지 민감한 편이 아니었다. 현역 시절 나나미는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었는데 계약 관계에 있는 아디다스 측에서 “이번에 이 모델을 신어줄 수 있겠냐?”고 하면 무조건 “알았다!”고 답했다.
축구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어떤 메이커든지 같은 모델이라도 일반 매장에서 판매 되는 제품과 스타급 선수들이 신는 제품은 차이가 있다. 선수들이 신는 제품은 선수 개인의 발 형태와 특징을 살려서 제작을 하는데 나나미는일반 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신었다.
그렇다고 나나미가 무조건 아무 축구화나 다 신은 건 아니다. 나나미도 기피하는 축구화가 있었다. 바로 캥거루 가죽 소재의 축구화다. 첫 번째 칼럼(‘초고급 축구화의 제1 원소, 천연 가죽’)에서 이미 밝힌 바 있지만 각 메이커 최고급 모델은 대부분 캥거루 가죽 소재이고, 선수들 거의 최고급 모델을 신는다. 하지만 나나미는 소가죽 소재의 축구화를 선호했다.
캥거루 가죽 축구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가죽이 매우 얇고 부드럽다는 것인데 오래 신거나 혹은 물에 젖었을 경우 늘어나는 단점이 있다. 나나미가 처음 축구화를 신은 건 5살 때였다. 당시 꼬마였던 나나미에게 맞는 사이즈의 축구화가 없었기 때문에 3센티미터 정도 큰 축구화를 구입한 후, 발 앞 쪽에 솜을 잔뜩 끼워 넣었다고 한다. 그 후,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캥거루 가죽 축구화를 신기 시작 했는데 수중전을 한번 치르고 나면 축구화가 많이 늘어나 불편을 느꼈다고 한다. 어릴 적, 불편했던 그 느낌이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져 나나미는 현역 생활동안 캥거루 가죽 소재의 축구화를 거의 신지 않았다.
나나미는 축구화를 고를 때 크게 두 가지에 중점을 뒀다. 하나는, 축구화 앞 부분에 (실)박음질이 여러 줄로 된 걸 선호했다. 박음질이 여러 줄로 돼있는 축구화가 덜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축구화 뒤꿈치 부분이 깊은 제품을 좋아했다. 나나미가 아디다스와 계약할 당시 타사 축구화와 비교를 해봤다고 하는데 아디다스 축구화가 타사 제품에 비해 뒤꿈치 부분이 조금 더 깊었다고 한다. 나나미는 축구화 뒤꿈치 부분이 깊어야 킥을 하는데 안정감이 있다고 말한다. 나나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축구화는 “볼과 느낌이 통하는 것”이란다.
2000년 아시안컵 MVP 수상자이기도한 나나미는 08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현재는 축구 해설자 겸 평론가로서 활동 중이다.
사진= ⓒ주빌로 이와타
필자인 김유석은 어린 시절 수없이 효창 운동장 담벼락을 넘었던 진정한 사커 키드다. 모두 대통령을 꿈꾸던 시절 홀로 차범근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이가 바로 그다. 축구를 풍성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