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를 처음 신었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해요. 아버지가 사 주신 첫 축구화는 ‘자가’라는 시장표 축구화였어요. 우리끼리는 ‘짜가’라고도 불렀던 축구화죠. 그 당시에는 남자 아이들 사이에 축구화를 신고 등, 하교 하는 게 유행 같은 거였어요. 길 위에서 ‘따각따각’ 소리를 내면서 걸으면 괜히 우쭐해지는 느낌 있죠? 일종의 특권의식 같은 거였어요.
그땐 축구화를 정말 소중하게 다뤘어요. 축구화를 신고 학교에 다녀온 뒤에는 바닥에 묻은 흙먼지를 다 털어내고 걸레로 깨끗이 닦아서 머리맡에 두고 잤을 정도죠. 나중에는 어른들이 축구화에서 냄새 난다고, 바깥에 두라고 하셨지만요.(웃음)
축구부에서 처음 받았던 운동화는 서경 축구화였어요. 선수들 사이에서는 최고로 인기 있었던 브랜드죠. 코가 닳아서 매직 같은 것으로 새까맣게 칠하기도 하고, 검정색 테이프로 붙였던 기억이 나네요.
선수 생활 중에 가장 애착이 갔던 축구화는 95년도에 신었던 나이키 축구화예요. K리그에서 8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던 당시에 신었던 축구화인데, 골 감각이 워낙 좋으니까 다른 축구화로 쉽게 갈아 신지 못했어요. 공격수들은 특히 그런 징크스 같은 것에 민감한 편이거든요. 그때만 해도 한두 경기 신었던 축구화는 늘어나서 금방 갈아주는 게 예사였는데,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축구화예요. 나중에는 앞쪽에 구멍이 날 정도였는데, 그래도 계속 골이 들어가니까 테이프를 붙여 신고 뛰기도 했어요.
수많은 축구화 중에 지금까지 갖고 있는 건 2002 월드컵 때 신었던 나이키 에어줌 토탈 90 축구화예요.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전에 신었던 축구화죠. 가볍고 편한 느낌의 축구화여서 좋아했는데,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던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어요. 그 당시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유니폼과 함께 개인 소장하고 있는, 현역 시절의 거의 유일한 축구용품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