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미쳤다. 여자도 아니고, 자동차도 아닌, 축구화와 심각한 사랑에 빠졌다. 물론 그들의 열정은 매우 순수하기 때문에 걱정할 건 없다. <올댓부츠>가 축구화 매니아들의 소굴 '사커즈'를 이끌고 있는 운영자들을 만났다.-편집자주
<올댓부츠>가 축구화 사랑으로 똘똘 뭉친 다음 카페 '사커즈(cafe.daum.net/soccerz2)의 카페지기 '남용모[데이비드 베컴](사커즈는 실명제로 운영되는 카페다)'씨와 또 다른 운영자 한 명을 만나기로 한 곳은 인천의 한 지하철역 앞에서였다. 한 인터넷 게임 회사에서 웹 디자이너로 재직하고 있는 남 씨는 3주 전 쯤 축구를 하다가 대퇴부에 금이 가서 휴직계를 제출한 상태라고 했다. 인천으로 향하며 '정말 상대를 제대로 잡았다. 대퇴부는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만이 다칠 수 있는 곳이야!'라며 쾌재를 불렀다. 목발을 짚은 남씨와 바르셀로자 자켓 안에 발렌시아 크루탑을 입은 최용욱[Paul Scholes]씨는 교통 체증 때문에 허겁지겁 뛰어온 <올댓부츠>를 반갑게 맞아줬다.
남 씨가 털어 놓은 '사커즈'의 탄생 배경은 너무나 극적이었다. "원래 있던 축구화 커뮤니티가 상업적으로 변모하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죠. 처음에는 직접 불만을 제기했는데 계속 '강퇴'를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총대를 매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제가 된 거죠. 2006년 12월 16일에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진성 회원'만 1만 3,500여 명에 운영자만 해도 열 명이 넘는 국내 최대의 축구화 커뮤니티가 됐지만, 처음에는 확장이 쉽지 않았다. 전에 소속된 카페는 회원들의 이동과 수많은 정보를 옮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순수한 축구 사랑은 열성적인 회원들을 끌어들이게 됐다.
카페가 생긴 지 두달 쯤 후에 지금의 '사커즈'를 있게 한 결정적인 '실명 혁명'이 일어났다. "사실 '사커즈'에 들어오는 회원들의 50% 정도는 '매물(회원간 직거래)'에 참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명화제는) 사기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죠. 하지만 일방적인 시도는 아니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회원이 소수일 때는 모두가 모여 회의를 하기도 했거든요. 실명제도 회원들이 먼저 제안을 한 겁니다. 물론 사기가 근절된 것은 아니에요. 앞으로는 안전 거래 같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 씨가 설명을 덧붙인다. 익명이 일반화된 사이버 세상에서 실명으로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축구화의 정보를 얻는 모든 길은 '사커즈'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됐다. 물론, 막대한 노력과 열성을 보였지만 운영자들이 얻은 것은 없다. 가끔은 억울한 비난을 받을 때도 있다. "그래도 가끔씩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카페에 정보가 정말 많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낍니다." 두 사람이 웃으며 입을 모았다.
두 운영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축구화 박사를 자처하는 <올댓부츠>도 세상은 넓다는 것을 절감했다. "스프라이트(스프린트 라이트)는 전 모델에 비해 괜찮아 졌어요. 아! 모렐웹(모렐리아 웨이브)이요? 그 모델은 이제 단종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대화에는 특정 축구화 모델을 지칭하는 축약어들이 난무했고, 축구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넘쳐났다. 반쯤 얼이 나간 상태에서 최 씨에게 결정타를 얻어 맞았다. 그는 "피로 골절은 말이죠..."라는 말로 시작해 축구화와 의학의 경계지점까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놀라운 내공을 발휘했다. <올댓부츠> 명예 축구화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싶을 정도였다.
계속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들이 묘사한 정모(정기 모임)의 풍경은 단연 압권이었다. 물론, 이들의 모임 장소는 카페 이름에 걸맞게 운동장이다. 이들은 얼마 전에도 서울의 모처에서 모여 5시간이나 축구를 하며 우의를 다졌다고 한다. "정모를 하면 정말 재미있어요. 참가 인원이 서른 명이라면 이 사람들이 모두 축구화를 두 족 이상 씩 가져 오는 거예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축구화를 가져온 회원들도 많아요. 그리고 축구 실력은 제각각이지만 장비만큼은 국가대표보다 더 완벽하게 갖추고 나오는 거죠. 이야기를 듣다가 살짝 "그럼 두 분은 축구화를 얼마나 가지고 계신나요?"라고 묻자, "세 족이요", "전 별로 없어요. 열 한 족 정도 있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 씨가 멋쩍은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축구화를 33족 정도 보유했을 때, 불현듯 모든 '아이들'을 찍으려고 침대에 쫙 깔아 놓았던 적이 있어요. 근데 카메라 앵글에 전부 담기지가 않았어요. 그 때 '아 내가 정말 미쳤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 근데 회원 중에는 130족을 가지고 있는 분도 있어요."
두 운영자는 정해 놓은 인터뷰 시간이 지나도록 '사커즈'에 대한 사랑과 '축구화'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저 축구화가 좋아서 아무런 보수도 없이 카페 관리와 유지에 힘쓰는 이들의 노력을 보며 새삼 즐거움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기사를 정리하며 카페를 둘러보는 동안에도 이들은 계속 '접속중'이었다. 최씨가 대화를 신청했다. "늦은 밤까지 고생하시네요." 무보수로 불철주야 노력하는 그들에게 글을 팔고 있는 <올댓부츠>는 "아닙니다. 고생은 무슨..."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