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 전쟁을 주도하는 ‘승리의 여신’
2009.05.04 18:14:45


너무 늦었지만, 시작이 반이다

나이키의 탄생을 정리해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육상 선수 출신의 필 나이트(나이키의 창업주)는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는 아디다스 운동화가 너무 비싼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질 좋고 싼 운동화를 꿈꿨고, 1962년 일본 여행에서 유명한 신발 회사 오니스카 타이거(Onisuka Tiger, 아식스의 전신)를 방문하기에 이른다. 나이트는 분명 여행자 신분이었지만 자신을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의 사장이라고 둘러대고 운동화 수입 계약을 따내고 본격적으로 운동화 사업에 뛰어든다.

운동화 판매에 비전이 있음을 깨달은 나이트는 발 빠르게 움직였고, 1972년에 나이키라는 새로운 회사를 세우기에 이른다. 나이키는 처음부터 신기술로 무장하고 아디다스와 푸마와 같은 기존 강자들을 위협했다. 나이키 개발자였던 빌 바우어만은 아침으로 와플을 먹다가 신발 밑창 생산에도 ‘와플 기계’를 사용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생각을 얻고, 실행에 옮긴다. 후발 주자 나이키는 이러한 기술과 ‘젊은 생각’으로 점점 빠르게 치고 올라왔고, 한창 소비력이 상승하던 미국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누구보다도 빠른 행보였다.

축구화 시장을 장악한 기술과 마케팅
후발 주자인 나이키는 특히 축구화 시장에는 매우 늦게 발을 들여놨다. 이미 선발 주자들은 1950년대부터 ‘전쟁’을 치르고 있었지만, 나이키는 1994년 미국월드컵이 돼서야 치열한 전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물론 나이키는 당시 매우 ‘작은 아이’였고, 단 여덟 명의 선수들만이 제품을 착용했다. 나이키는 자체 스포츠 연구센터 (Nike Sport Research Lab)를 앞세워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부터 점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프랑스 월드컵은 나이키에게 의미있는 대회였다. ‘축구황제’ 호나우두가 나이키의 ‘머큐리얼 2.1(메큐리얼 베이퍼 전신)’을 신고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대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나이키의 성공에는 기발하고 파격적인 홍보 전략도 한 몫 했다.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프랑스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에릭 칸토나는 최고의 모델이었다. 바바라 슈미트가 쓴 <축구화 전쟁>에 따르면 ‘악동’ 이미지가 강했던 칸토나는 나이키 광고에 출연해 “나는 골키퍼를 때렸기 때문에 출장정지를 당했습니다…나는 출장정지 처분을 내릴 심사위원들을 백치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스폰서 구하기는 틀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는 실로 파격적인 광고였고, 소비자들의 뇌리에 나이키를 깊이 각인 시켰다. 또한 브라질 대표팀의 현란한 몸동작과 삼바 리듬을 조합한 광고도 대성공을 거뒀다.






21세기 나이키의 3색 전략… ‘3 silo’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나이키는 국내 축구화 시장에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앞서 언급했던 뛰어난 홍보/마케팅 전략도 한몫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었다. 나이키는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로 품질을 나날이 발전시켰고,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그리고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같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직접 교감을 나누며 ‘선수들의 요구 사항’을 파악하는데도 힘썼다. 그 결과 나이키는 21세기 들어서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성공적으로 축구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다.

나이키는 현재 세 가지 기능성을 세분화하며 축구화 라인도 크게 세 종류로 나눴다. 이른바 ‘쓰리 사일로(3 silo)’다. 이러한 전략은 소비자들의 수 많은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게 됐고,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세 가지 라인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스피드(Speed)’를 강조한 강조한 ‘머큐리얼 (Mercurial)’라인, 패스와 슈팅의 ‘정확성(Accuracy)’을 위한 ‘토탈90(Total 90)’ 그리고 전통적인 나이키 축구화의 전통을 이으며 ‘터치(Touch)’감을 강조시킨 ‘티엠포(Tiempo)’ 라인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 가장 큰 호응을 받고 있는 제품군은 ‘머큐리얼 (Mercurial)’라인의 머큐리얼 베이퍼다. 1998년 태어난 머큐리얼 베이퍼는 이미 10년 동안 인기를 이어온 나이키의 주력 상품이다. 현재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프랑크 리베리와 같이 빠른 속력과 치명적인 슈팅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애용하고 있다. 머큐리얼 베이퍼는 매끈한 외형뿐 아니라 감각적인 색상으로 특히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라운드 위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고 싶은 정확하게 잡아낸 것이다.

사족 1
한국은 나이키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나이키의 필 나이트 사장은 자체 브랜드 출시를 결심한 후 ‘오니스카 타이커’의 하청 제조업체와 계약을 맺는데, 이 업체는 다름 아닌 한국 업체였다.

사족 2
나이키의 이름에도 비밀이있다. 필 나이트 사장은 처음에 회사의 이름을 ‘식스(six)’라고 지으려 했다. 하지만. 동료의 권유로 날개를 단 승리의 여신인 ‘나이키(NIKE)’를 선택하게 됐다.로고인 ‘스우시(Swoosh)’는 디자인을 전공하던 캐롤라인 데이비슨에 의해 탄생했고, 데이비슨은 이 로고를 35달러에 필 나이트에게 팔았다.


나이키 축구화 제작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