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연재부터는 본격적으로 축구화 제조사와 축구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처음으로 소개할 브랜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로고를 자랑하는 푸마(PUMA)다. 푸마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낱낱이 들여다 보도록 하자.
조금 빗나간 출발과 화려한 비상
푸마(PUMA Schuhfabrik Rudolf Dassler)는 1948년 4월에 창업자인 루돌프 다슬러가 동생이자 아디다스의 창업자 아돌프 다슬러와 완전히 갈라서며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푸마의 첫 로고는 같은 해 10월 만들어졌는데 ‘D’자 가운데로 뛰어오르는 날렵하고 작은 푸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실 루돌프는 사업 수완이 뛰어난 지략가였고, 아돌프는 신발밖에 모르는 장인이었기 때문에 아디다스의 기술력이 우위에 있었다. 단 축구에서는 복사뼈를 가리지 않는 푸마의 축구화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루돌프의 불 같은 성질이 문제를 일으켰다.
바바라 스미트가 지은 ‘운동화 전쟁’에 따르면 아돌프는 1954년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 독일 대표팀 감독인 제프 헤르베르거가 자신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자 “당신은 작은 나라의 왕이지만 마음의 들지 않으면 우리가 갈아치워 버릴거요”라고 역정을 냈다. 화가난 헤르베르거는 아디다스와 손을 잡았다. 결국 독일 대표팀은 비가 내려 질퍽한 경기장에서 아디다스가 만든 최신 ‘스터드 탈착형 축구화’를 신고 뭉뚝한 ‘구식 축구화’의 헝가리를 꺾고 우승을 거둔다. 푸마 기술자들은 자신들이 먼저 스터드 탈착 기술을 만들었다면서 땅을 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영광은 아디다스에게 돌아갔다.
첫 영광은 빼앗겼지만 푸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에게 축구화를 공급하며 입지를 넓혀갔다. 펠레는 푸마를 신고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1966년에는 포르투갈의 흑표범 에우제비우가 새로 나온 ‘킹’을 신고 북한의 돌풍을 잠재웠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스포츠 마케팅 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펠레는 결승전 킥오프 휘슬이 울리기 전에 주심에게 양해를 구한 뒤 축구화 끈을 고쳐 묶었다. 순간 모든 중계 카메라가 선명한 푸마 로고가 새겨진 펠레의 신발을 잡았다. 후에 이 사건은 푸마와 펠레가 사전에 협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푸마는 확실하게 설욕했다. 이후 요한 크루이프, 디에고 마라도나 그리고 로타르 마테우스가 푸마를 애용했다.
지루한 건 싫어! 재미있고 특이한 축구장의 이단아
푸마의 명성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물론 ‘어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오늘’을 영위하고 있었다. 도움을 줄 푸마코리아의 손성빈 마케팅 팀장을 만나기 위해 새로 생긴 명동 매장을 찾았을 때 단번에 ‘푸마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된 축구화들은 하나같이 축구화라기 보다는 ‘예쁜 운동화’ 같았다. 손성빈 팀장이 규정하는 푸마도 다르지 않았다. “저희는 물건의 품질을 말하지 않습니다. 품질은 기본이고 모든 부분에서 즐거운(fun) 요소를 찾아내는 거죠. 특이하고 예쁜 디자인으로 승부합니다.”
현 회장인 요헨 자이츠가 전권을 잡은 이후 푸마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뒀고, 체질 변화를 겪었다. 축구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점잖은 신사에서 춤추는 청년으로 변신을 꾀한 것. 손 팀장은 “다른 브랜드들과 같이 저희도 세 종류의 축구화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스피드를 중점으로 하는 ‘V시리즈’, 고전적이고 중후한 ‘킹’ 그리고 강력하고 거친 ‘컨스트럭트’. 하지만, 다른 회사의 제품보다 혁신적인 디자인이 돋보입니다. 기존의 축구화와는 다른 부분이 있어서 꺼리는 분들도 있지만 일단 신어보면 손가락을 치켜 올립니다. 디자인뿐 아니라 품질도 다르니까요”라며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푸마는 지원 선수를 고를 때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아무나 돈이 된다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날렵함, 준수함 그리고 즐거움을 따진다. 다들 의문을 갖는 아프리카 마케팅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손 팀장은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아프리카는 ‘즐거움’과 ‘흥겨움’의 상징입니다. 골을 넣고 춤을 추거나 익살맞은 행동을 하는 아프리카 선수들은 푸마가 지향하는 바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강인한 신체 조건을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을 갖죠”라고 설명했다. 흔히 알고 있는 지원 비용이 싸서 아프리카를 고집한다는 이야기는 낭설에 불과했다.
푸마는 올 해 한국인의 발에 맞게 새단장을 마친 V1.08과 컨스트럭트 신모델 그리고 킹의 다른 색상 모델을 출시를 앞두고 있다. 물론 ‘모든 경쟁 업체를 제치고 무조건 1위를 차지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지는 않는다. 즐거움과 세련됨을 앞세워 축구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60세를 넘긴 ‘맹수’는 더욱더 젊어지고 있다.
(사족 1)
아돌프 다슬러가 자신의 이름과 성을 결합해서 아디다스를 만들었다. 사실 루돌프 다슬러도 이런 생각을 했고, 처음에는 회사 상호를 ‘RU-DA’라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지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역동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푸마로 이름을 바꿨다.
(사족2)
2004년 푸마는 유례없는 ‘원피스 유니폼’을 개발해서 카메룬 대표팀에 지급했다. 분명 규정에는 어긋나지 않았지만 FIFA는 원피스 유니폼을 입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한다면 승점 6점을 깎고 벌금을 주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푸마는 ‘축구를 구하자(Save the Game)’라는 익살맞은 광고로 FIFA의 항복을 받아냈다.
Save the Game 홈페이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