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의 진화, '보호장비에서 첨단 과학으로'
2009.05.04 17:58:08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 축구화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만들어졌다. 축구는 과거에 더 격렬하게 치러졌고, 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특히 거친 경기에 발가락과 발목은 하루도 성할 날이 없었다. 이에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발가락과 발목을 보호할 수 있는 아주 튼튼한 축구화를 만들어냈다.

1세대 축구화는 등산화나 군화에 가까운 생김새였다. 전체적으로 두껍고 튼튼한 가죽을 재료로 했고, 신발이 발목까지 올라온다. 그리고 밑창에는 스터드(stud)가 박혀있었다. 특히 발가락을 보호하기 위하여 축구화의 앞부분에는 철제 보호대가 들어있었고, 가죽을 덧대기도 했다. 당시 축구화는 스피드나 편안한 착용감 그리고 섬세한 볼터치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의 축구화는 보호장비였던 것이다.

1950년대, 축구화 역사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의 진원지는 독일의 작은 마을 헤르초가나우라흐. 아디다스의 창시자 아돌프 다슬러는 보호장비에 불과했던 축구화를 편의장비로 탈바꿈 시켰다. 다슬러는 일단 무거운 가죽을 버리고 가벼운 나일론을 축구화 재료로 삼았고, 스터드를 밑창에 탈 부착할 수 있는 새로운 축구화를 만들었다. 2세대 축구화의 탄생이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독일팀은 아디다스의 ‘2세대’축구화를 신고 출전했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독일과 헝가리의 결승전이 열리던 날엔 비가 많이 왔다. 계속된 경기로 스터드가 뭉뚝해진 헝가리 선수들은 계속해서 그라운드 위에서 미끄러졌지만, 스터드를 교체할 수 있었던 독일 선수들은 날렵하게 경기장을 누볐다. 결과는 독일의 3-2 승리, 동시에 아디다스의 승리였다.





아디다스의 성공은 축구화 발전에 강력한 촉매제가 됐다. 다른 스포츠용품사들도 축구화 개발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여러 회사의 연구개발로 축구화는 다시 한 번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1960년대 들어 현대적인 축구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재부터 변화가 있었다. 나일론 소재와 두꺼운 가죽 일색이었던 축구화 외피에 질 좋은 합성피혁과 소가죽 그리고 캥거루가죽이 등장했다. 소재가 변하자 착용감이 좋아 섬세한 트래핑에 도움이 됐다. 스터드의 형태와 배치도 많이 변했다. 스터드는 과학적인 실험과 계산을 통해 길이와 위치가 결정됐다. 1980년대, 2세대 축구화 기술은 정점에 이른다. 아디다스가 1982년 만들어져 아직까지 사랑 받고 있는 명작 ‘코파문디알’은 '2세대 축구화 기술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20세기 말, 축구화는 과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제2의 혁명기를 맞이한다. 축구용품 회사들은 과학자들을 연구원으로 고용하며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렸고, 유명 축구선수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했다. 3세대 축구화는 견고함과 안정성을 발전시키면서도 경량화를 통해 자유롭고 빠른 움직임이 가능한 축구화를 이상향으로 삼았다. 그 결과 가볍지만 내구성이 강한 새로운 소재가 등장했고, 스터드의 모양과 종류도 다양해졌다. 또한, 디자인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외양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색상도 매우 다양해졌고, 겉모양도 예뻐졌다. 그 결과 운동화보다 예쁜 축구화가 탄생했고, 축구화가 운동화로 재탄생 하는 일도 생겨났다.

축구화는 보호장비로 태어났지만, 이제 아무도 축구화를 보호장비로 생각하지 않는다. 보호장비에서 과학으로 거듭난 것이다. 축구화는 첨단 과학의 집합체가 됐고, 지금 이순간에도 진보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제4세대 축구화의 탄생을 목도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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