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축구화의 제1원소, 천연 가죽

캥거루 가죽 외에 소 가죽도 많이 사용된다. 소 가죽은 ‘캥거루 가죽에 비해 탄력도 떨어지고 두껍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최근에는 부쩍 좋아진 모습이다. 특히 푸마 킹XL에 쓰인 소 가죽은 웬만한 캥거루 가죽을 넘어선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캥거루 가죽은 한 종류인 반면에 소 가죽은 3종류로 나뉜다. 소의 연령과 상태에 따라 나뉘어 쓰이고 있는 것이다. * 카프(Calf) 소 가죽 가운데 캥거루 가죽 소재에 가장 가까운 것이 \'카프\'다. 생후 6개월 이내의 아기 소로 만든 가죽인데, 표면이 매우 부드럽고 섬세하면서 탄력성이 좋은 걸로 알려져 있다. * 킵(Kip) 생후 6개월~2년 정도 된 소의 가죽이다. * 스티어(Steer) 생후 3개월~6개월 이내에 거세(去勢)된 2살 이상의 수소로 만든 가죽이다.(‘Steer’의 사전적 의미는 거세우(去勢牛)) 천연 가죽 축구화의 장점은 꼽자면 신으면 신을 수록 발에 잘 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기성(通氣性)이 좋고, 내구성(耐久性)도 뛰어나다. 단점으로는 변형이 빨리 되고 물에 약하다는 건데, 천연 가죽 축구화를 신고 수중전을 치렀을 경우엔 이후에 정성 어린 손질이 필요하다. 하지만 잘 만 어루만져주면 나만의 축구화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고 하겠다. 최근 신 소재 축구화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축구 선수들이 천연 가죽을 선호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있다 . 필자인 김유석은 어린 시절 수없이 효창 운동장 담벼락을 넘었던 진정한 사커 키드다. 모두 대통령을 꿈꾸던 시절 홀로 차범근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이가 바로 그다. 축구를 풍성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05월18일

최효진에게 축구화는 곧 아버지

‘축구화’하면 아버지 얘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축구를 하는 내내 아버지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거든요. 제 위로 누님 두 분이 계시는데, 외아들이어서인지 아버지가 제게 쏟는 정성과 기대가 크셨던 것 같아요. 항상 남들보다 더 좋은 축구용품을 챙겨주셨죠.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어요. 처음 신었던 축구화 브랜드는 ‘리복’이었고요. 대부분의 친구들이 체육사에서 ‘키카’를 사 신었던 당시로서는 굉장히 고가의 제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하지만 리복 축구화는 처음 신은 후로는 다시 안 사게 됐어요. 축구화 전문 브랜드가 아니어서 잘 맞지 않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나중에는 친구들과 똑같이 체육사에서 키카를 사 신었죠. 어렸을 때부터 축구화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새 축구화를 보면 그렇게 갖고 싶을 수가 없더라고요. 새 축구화가 나올 때마다 아버지를 조르곤 했어요. 그런데 정말 좋은 축구화는 성인용(250mm 이상)만 나오거든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 발이 작은 편이었어요. 그러니 새 축구화를 사도 실제로 신고 뛸 수는 없었던 거죠. 집에 ‘모셔놓기만’ 했던 축구화가 몇 켤레 됐어요. 그래도 아들이 새 축구화를 보면 너무 좋아하고 행복해하니까 아버지가 못이기는 척 사 주셨죠. 그때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훈련이 없는 주말마다 집(파주)에 가면 ‘전시용’ 축구화들을 신어보고 발이 얼마나 컸는지 확인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한 번 선택한 축구화를 계속 신는 스타일이에요. 지금 신고 있는 축구화는 나이키 베이퍼예요. 신었을 때 발이 편하고 가벼운 느낌이 있는 축구화를 좋아해요. 축구화 중에서도 내 발이랑 딱 하나가 되는 느낌인 게 있거든요. 베이퍼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축구화가 아니어서(편집자 주- 나이키 스킨으로 제작) 잘 늘어나지 않아요. 축구화가 늘어나거나 발 모양에 따라 변형되면 금방 바꿔야 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좋죠. 코팅처리가 돼 있는 것도 장점인 것 같아요. 비가 와도 축구화 속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으니 직접 신고 뛰는 입장에서 좋아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고 보니 환경에 따라서도 축구화에 대한 기억이 달라지네요. 예전에 맨땅이나 효창운동장(인조구장)에서 뛸 때는 축구화 ‘코’가 자주 벗겨졌던 것 같은데, 요즘은 더 이상 그럴 일이 없잖아요. 그때는 슈팅을 자주 하면 축구화 앞 부분 가죽이 다 벗겨지고 구멍이 나기도 했거든요. 구두약으로 색깔을 덧칠하기도 하고 구멍 난 부분을 테이프로 붙여놓기도 했죠. 지금은 축구화들이 워낙 좋게 만들어지는데다 잔디에서 축구를 하니까 뽕이 닳지도 않고 코가 빠지는 일도 없죠. 축구화가 가벼워진 것도 좋고요. 하지만 이 이상 가벼워질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05월18일

축구화에 '미친' 매니아들, 사커즈

그들은 미쳤다. 여자도 아니고, 자동차도 아닌, 축구화와 심각한 사랑에 빠졌다. 물론 그들의 열정은 매우 순수하기 때문에 걱정할 건 없다. 가 축구화 매니아들의 소굴 \'사커즈\'를 이끌고 있는 운영자들을 만났다.-편집자주 가 축구화 사랑으로 똘똘 뭉친 다음 카페 \'사커즈(cafe.daum.net/soccerz2)의 카페지기 \'남용모[데이비드 베컴](사커즈는 실명제로 운영되는 카페다)\'씨와 또 다른 운영자 한 명을 만나기로 한 곳은 인천의 한 지하철역 앞에서였다. 한 인터넷 게임 회사에서 웹 디자이너로 재직하고 있는 남 씨는 3주 전 쯤 축구를 하다가 대퇴부에 금이 가서 휴직계를 제출한 상태라고 했다. 인천으로 향하며 \'정말 상대를 제대로 잡았다. 대퇴부는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만이 다칠 수 있는 곳이야!\'라며 쾌재를 불렀다. 목발을 짚은 남씨와 바르셀로자 자켓 안에 발렌시아 크루탑을 입은 최용욱[Paul Scholes]씨는 교통 체증 때문에 허겁지겁 뛰어온 를 반갑게 맞아줬다. 남 씨가 털어 놓은 \'사커즈\'의 탄생 배경은 너무나 극적이었다. \"원래 있던 축구화 커뮤니티가 상업적으로 변모하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죠. 처음에는 직접 불만을 제기했는데 계속 \'강퇴\'를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총대를 매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제가 된 거죠. 2006년 12월 16일에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진성 회원\'만 1만 3,500여 명에 운영자만 해도 열 명이 넘는 국내 최대의 축구화 커뮤니티가 됐지만, 처음에는 확장이 쉽지 않았다. 전에 소속된 카페는 회원들의 이동과 수많은 정보를 옮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순수한 축구 사랑은 열성적인 회원들을 끌어들이게 됐다. 카페가 생긴 지 두달 쯤 후에 지금의 \'사커즈\'를 있게 한 결정적인 \'실명 혁명\'이 일어났다. \"사실 \'사커즈\'에 들어오는 회원들의 50% 정도는 \'매물(회원간 직거래)\'에 참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명화제는) 사기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죠. 하지만 일방적인 시도는 아니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회원이 소수일 때는 모두가 모여 회의를 하기도 했거든요. 실명제도 회원들이 먼저 제안을 한 겁니다. 물론 사기가 근절된 것은 아니에요. 앞으로는 안전 거래 같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 씨가 설명을 덧붙인다. 익명이 일반화된 사이버 세상에서 실명으로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축구화의 정보를 얻는 모든 길은 \'사커즈\'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됐다. 물론, 막대한 노력과 열성을 보였지만 운영자들이 얻은 것은 없다. 가끔은 억울한 비난을 받을 때도 있다. \"그래도 가끔씩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카페에 정보가 정말 많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낍니다.\" 두 사람이 웃으며 입을 모았다. 두 운영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축구화 박사를 자처하는 도 세상은 넓다는 것을 절감했다. \"스프라이트(스프린트 라이트)는 전 모델에 비해 괜찮아 졌어요. 아! 모렐웹(모렐리아 웨이브)이요? 그 모델은 이제 단종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대화에는 특정 축구화 모델을 지칭하는 축약어들이 난무했고, 축구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넘쳐났다. 반쯤 얼이 나간 상태에서 최 씨에게 결정타를 얻어 맞았다. 그는 \"피로 골절은 말이죠...\"라는 말로 시작해 축구화와 의학의 경계지점까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놀라운 내공을 발휘했다. 명예 축구화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싶을 정도였다. 계속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들이 묘사한 정모(정기 모임)의 풍경은 단연 압권이었다. 물론, 이들의 모임 장소는 카페 이름에 걸맞게 운동장이다. 이들은 얼마 전에도 서울의 모처에서 모여 5시간이나 축구를 하며 우의를 다졌다고 한다. \"정모를 하면 정말 재미있어요. 참가 인원이 서른 명이라면 이 사람들이 모두 축구화를 두 족 이상 씩 가져 오는 거예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축구화를 가져온 회원들도 많아요. 그리고 축구 실력은 제각각이지만 장비만큼은 국가대표보다 더 완벽하게 갖추고 나오는 거죠. 이야기를 듣다가 살짝 \"그럼 두 분은 축구화를 얼마나 가지고 계신나요?\"라고 묻자, \"세 족이요\", \"전 별로 없어요. 열 한 족 정도 있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 씨가 멋쩍은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축구화를 33족 정도 보유했을 때, 불현듯 모든 \'아이들\'을 찍으려고 침대에 쫙 깔아 놓았던 적이 있어요. 근데 카메라 앵글에 전부 담기지가 않았어요. 그 때 \'아 내가 정말 미쳤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 근데 회원 중에는 130족을 가지고 있는 분도 있어요.\" 두 운영자는 정해 놓은 인터뷰 시간이 지나도록 \'사커즈\'에 대한 사랑과 \'축구화\'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저 축구화가 좋아서 아무런 보수도 없이 카페 관리와 유지에 힘쓰는 이들의 노력을 보며 새삼 즐거움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기사를 정리하며 카페를 둘러보는 동안에도 이들은 계속 \'접속중\'이었다. 최씨가 대화를 신청했다. \"늦은 밤까지 고생하시네요.\" 무보수로 불철주야 노력하는 그들에게 글을 팔고 있는 는 \"아닙니다. 고생은 무슨...\"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05월18일

2009 K-리거의 축구화, 나이키

주춤거리는 전통의 강자 아디다스와 푸마 오랫동안 축구화의 대명사였던 아디다스는 조금 주춤거리는 모습이다. 2위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 속에 각인돼 있던 아디다스의 모습과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프레데터 시리즈와 아디퓨어 시리즈는 선수들에게 사랑 받고 있지만 다른 제품들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일례로 리오넬 메시와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와 같은 슈퍼스타들이 애용하는 F50 시리즈는 국내 선수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3두 마차 중에 한 마리가 힘을 쓰지 못하자 아디다스의 전투력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홍보, 마케팅 측면에서도 나이키에게 ‘중과부적(衆寡不敵)’인 처지라 힘에 부치는 상태다. 물론 이대로 물러설 아디다스는 아니다. 특유의 우직한 기술력에다가 참신한 발상을 탑재한 ‘F50 I’와 프레데터 시리즈의 열 번째 모델로 다시 한 번 K-리거들의 마음을 붙잡을 태세다. 한 때 축구화 시장에서 완벽하게 변방으로 밀려났던 것을 생각하면 푸마의 행보는 기대 이상이지만 인상적이지는 않다. 아디다스의 뒤를 바짝 쫓고 있지만, 새로운 모델들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다. 프레스토, 레저버와 같은 일본제 전통적인 제품들은 꾸준히 선수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의욕적으로 내놓았던 킹과 V1.08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실패를 만회하기 내놓은 V2.08이 선수들에게 반응이 좋다는 것이다. 날렵함과 특유의 발맛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단점들을 완벽하게 수정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푸마는 올 겨울에 현재의 구도를 뒤 흔들 수 있는 제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은 그 파급효과를 예상할 수는 없는 단계다. 어쨌든 푸마는 조금 더 분발해야 할 처지다. 한편 아식스, 엄브로, 리복, 디아도라, 로또 같은 브랜드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K-리그는 다른 리그에 비해서 축구화의 다양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 같은 브랜드들은 이러한 파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주시해야 할 것이다.

05월18일

병든 축구화의 아버지, 김철 장인

창갈이? 새로운 탄생! 축구화 수선이 그저 창갈이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철 사장의 가게에는 새 축구화도 많다. 길이가 맞지 않거나 발 볼이 맞지 않아 불편한 새 축구화는 김철 사장의 손을 거쳐 맞춤 축구화로 거듭난다. 프로축구 선수 중에서도 새 축구화를 받자마자 장인에게 보내는 단골고객이 많다. “윤정환이도 많이 왔고 (김)대의도 많이 왔지. 선수들은 발이 생명인데 잘 안 맞는 축구화를 신으면 안돼. 나한테 보내서 발에 꼭 맞게 고쳐달라는 거야.” 축구화 수선은 단순히 뜯어진 부분을 꼬매고 다 닳아버린 밑창을 교체해주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축구화를 만드는 것과 같다. “신발의 특성을 다 살려 줘야 해. 수리한다고 다 떼어버리면 안돼. 만들 때부터 특징이 있게 만들어진 거야. 택배로 오는 물건들은 어떻게 고쳐달라는 주문이 적혀있어. 축구화가 비싼데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근데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다 알아서 해주니까. 수선은 창만 갈아주는 게 아니야. 맞춤 구두랑 똑 같은 거야. 발에 잘 맞게 새로 만들어 주는 거지.” “그렇게 오래 걸려요?” 축구화를 수선하러 온 손님이 수선하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말에 놀라서 묻는다. 장인이 웃으며 대답한다. “아저씨, 다시 만드는 거예요. 시간이 많이 들어가야 숙성이 돼서 예뻐져요. 수선 시간이 짧으면 발도 아프고 안 좋아요.” 최신 기계를 자랑하는 수선가게들은 1~2 시간에 축구화를 고쳐준다고 광고하고 있지만, 그는 제대로 수선하기 위해서 일주일 정도의 ‘숙성’기간을 갖는다. “수요일, 토요일. 수리된 축구화는 일주일에 두 번 나가지.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보면 돼. 숙성이 돼야 하거든. 접착제도 잘 붙고, 형태도 잘 고정되려면 시간이 필요해. 빨리 나간다고 좋은 게 아니야.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어.” 장인의 걱정 그라운드를 누비거나 선수들을 지도하진 않지만 그는 엄연한 축구인이다. 축구선수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는 축구를 즐기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긴 세월 동안 축구화 수선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축구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수선양이 너무 많아도 기분이 좋지 만은 않다. “신는 사람들이 가벼울 걸 찾으니까 만드는 회사측에서도 가볍게 만들 수 밖에 없는 거야. 가볍게 만들면 망가지기가 쉽거든. 그리고 요즘 안 좋은 소재를 쓰는 회사도 많아. 생산 공장은 죄다 중국에 있고. 그러면 좋은 축구화가 나오지 않아. 가격은 비싼데 말이지.” 그는 계속해서 입지를 잃어가는 국내 축구화의 현실에도 씁쓸해했다. “키카가 (양이) 많이 줄었어. 물론 쉽지 않은 것도 알아. 나 축구화 만들어 봤지만 쉬운 게 아니거든. 개발하는 데 돈이 엄청 많이 들거야.”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인터뷰 동안 장인은 축구화 수선에 대한 열정과 축구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그가 장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가니 옆으로 곧 철거될 동대문 운동장이 어렴풋이 보인다. 가게 옆에 버티고 섰던 동대문 운동장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장인에게 은퇴는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05월18일

정경호가 말하는 '키카 K777'

저의 첫 축구화는 시장표였어요. 5천원 정도 했었는데 항상 신고 다녔죠. 학교갈 때도 신고, 교실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고는 운동장에 나올 때 다시 축구화를 신었어요. 그러던 즈음, 당시로서는 꿈의 축구화인 키카의 K777을 신게 됐어요.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저희 부모님은 아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흔쾌히 허락하셨거든요. 그게 상당히 비쌌어요. 당시 유일하게 ‘검은 뽕(스터드)’이 있었고요. 다른건 전부 흰 스터드였거든요. 그래서 상당히 아껴 신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시합에만 신고 나갔고, 시합 때도 비오면 안 신었어요. 이제는 구두약을 발라서 관리하는 축구화가 없지만, 그 때는 구두약으로 까맣게 잘 칠해서 사물함 위에 딱 올려놨어요. 보물 모시듯 아꼈죠. 제가 (설)기현이 형하고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는데요. 형은 집 형편이 안좋아서 감독님이 축구화도 사주고 그랬어요. 그리고 그 때는 형이 워낙 말랐어요. 키는 지금처럼 컸는데 너무 말라서 휘청휘청 거렸어요. 상상이 안되죠? 그래도 형은 정말 열심히 했고, 그 결과 지금처럼 성공하게 된거죠. 지금 신고 있는 축구화는 나이키의 머큐리얼 베이퍼2 모델이에요. 지금은 단종됐는데 예전에 구해놨던 것을 꺼내 신고 있어요. 그나마 하나 밖에 남지 않았죠. 제가 칼 발에다가 스피드를 이용하는 편이기 때문에 날렵한 축구화를 좋아해요. 머큐리얼 베이퍼 시리즈 중에서도 그 모델이 가장 좋아요. 축구인들 사이에서는 소위 ‘명품 축구화’로 통한다니까요. 그래서 지금까지 누구 주지도 않고 잘 챙겨놨죠. 축구화를 받아오면 부모님이 저도 모르게 막 줘버리는데 이것만은 절대 사수했어요. 이제 남은 한 족은 시합 때만 신을 예정이에요. 축구화는 뽕이 생명이거든요. 올 시즌 어떻게 버텨낼지 걱정이에요.

05월18일

나이키의 심장, 포틀랜드를 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창의력, 도전, 혁신’과 같은 단어들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기에는 충분한 개념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눈에 잡히지 않는 가치들을 눈에 보이는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나이키의 디자인 철학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난 필 디킨슨은 ‘엉뚱함’과 ‘과학적 접근’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단어를 함께 사용했다. 그는 나이키 풋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엉뚱한 상상이 새로운 제품의 개발마다 어떤 착안점이 됩니다. 우리는 좀 더 빠르고 날쌘 축구화의 뒷축을 고안하기 위해 람보르기니의 후면을 관찰해요. 비행기에 사용되는 소재로 운동화를 만들 수도 있고요. 세상의 모든 팀이 이기길 원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팀이 이기길 원하잖아요. 그럼 무엇을 못하겠어요? 당장, 선수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야죠.” 그는 2008년 나이키에서 새롭게 출시되는 세계 각국 유니폼들의 컨셉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한국대표팀 유니폼의 디자인이 유난히 타이트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활짝 웃는다. “그렇죠. 훨씬 다이나믹하지 않나요? 나이키는 제품을 그냥 만들지 않습니다. 모든 개발 단계에서 선수들의 피드백을 받죠. 제 생각에는 이 중에서 한국대표팀의 유니폼이 가장 인상적인 것 같은데요.(웃음)” 나이키가 자신들의 제품에 자신감을 갖고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것은 바로 그 디자인 철학이 과학적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영감’을 실제 데이터로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나이키 캠퍼스에서 제품개발을 위한 핵심연구가 이뤄지는 곳 ‘NSRL(Nike Sports Research Lab)’이다. 직접 연구실 소개를 맡은 NSRL의 이레즈 모렉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개발을 위한 정보의 수집,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실제적용”이라고 강조했다. 한 예로 토탈 90을 개발할 당시 나이키 연구원들은 발등에는 70개의 서로 다른 슈팅 포인트가 있고, 공이 맞는 위치에 따라 골의 정확도에 실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웨인 루니와 함께 수십 번의 테스트를 거친 후 좀 더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고, 이런 결과들이 그대로 디자인에도 반영됐다. 그들은 지난 6년 간 프리미어리그의 득점왕이 모두 나이키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연이나 기적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강조한다. 가족 같은 회사, 혁신의 원동력 나이키의 캠퍼스 투어 공개행사가 마무리 되어갈 때 즈음 기자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최고가 되기 위한 스트레스는 어디에도 없는 걸까? 2008년 새롭게 출시되는 나이키의 새로운 축구공 ‘OMNI’를 비롯 새로운 축구장비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던 크리스 본드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이키의 축구용품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글로벌 매니저다. “스트레스요? 글쎄요, 이 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흥분되고, 매력적이에요. 나이키 캠퍼스 자체가 하나의 ‘가족’ 같은 느낌이거든요.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행운이죠.” 2만 명 이상의 직원들이 나이키 캠퍼스에 상주하고 있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치열한 경쟁, 바쁜 일상,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야 하는 압박감 등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나이키 캠퍼스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여유’다. 직원들 대부분에게서도 이곳이 평화로운 하나의 ‘나이키 마을’과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실제로 나이키 캠퍼스 안에는 각 건물마다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최고급 카페테리아 시설부터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까지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다. 캠퍼스 한 켠에는 나이키의 일본인 투자자를 기념해 만들었다는 일본식 정원까지 있을 정도니 어느 곳으로 발길을 돌려도, 그야말로 동화 같은 풍경이 계속된다. 세계 최고의 환경이 그들의 창의력을 촉진하고 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내도록 돕는다. 사실 나이키가 축구시장은 물론 스포츠 마케팅 영역에서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거듭난 방식은 ‘아메리칸 드림’과 많이 닮아있다. 그것은 빠르고, 또 대중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그 자본을 바탕으로 하나의 ‘히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이키가 만드는 옷, 신발, 가방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역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개척자들은 그렇게 역사를 만들어 간다.

05월18일

이동국이 나이키 리게라를 신는 이유

제가 축구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아디다스 축구화와의 만남 때문이었어요. 축구를 시작할 때 아디다스 축구화를 주는거예요. 그래서 속으로 \'아디다스 축구화를 매일 신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아디다스는 그 때 뿐이었고 그 뒤로는 키카에서 나온 축구만 신었죠. 아디다스 축구화는 처음 시작할 때 두 켤레 준 것으로 끝이었어요. 그 뒤로는 계속 본인 돈으로 사 신었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 까진 키카만 신었죠. 그러다 프로 입단하면서 아디다스 축구화를 다시 만났어요. 고3때 포항하고 계약을 했는데 잔디에서 신을 축구화가 없었어요. 맨날 맨 땅에서만 축구를 했으니까요. 그러다 계약하기 전 감독님께서 아디다스의 코파 문디알을 갖다 주셨어요. 너무 좋은거예요. 얼마나 좋아. 아까워서 신지도 못하고 모셔뒀어요. 시중에는 비싸서 잘 팔지도 않는 축구화였으니까요. 그래서 고이 모셔두고 경기할 때만 신었는데 그거만 신으면 골이 잘 들어가는거에요. 근데 프로에 오니까 그 축구화가 굉장히 많았어요. 난 애지중지하면서 경기 때만 신었는데 좀 어안이 벙벙했죠. 그 뒤로 프로에서는 줄곧 나이키의 축구화만 신고 있어요. 1998년에 처음 신었는데 그 당시에는 축구화로서는 아디다스부터 뒤져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나이키라는 브랜드 자체에 굉장히 매력을 느꼈어요. 멋있잖아요. 나이키의 여러 모델을 지금까지 신고 있는데 그 중에서 전 티엠포 축구화를 좋아했어요. 예전에 나온 모델인데 지금 것은 조금 무겁더라고요. 그리고 머큐리얼 베이퍼도 많이 신었는데 최근에는 리게라도 신고 두루 번갈아가며 신고 있어요. 그러는 이유는 발이 편하기 위해서죠. 지금 발 뒤꿈치가 불편한데, 리게라가 힘이 좀 없어서 신으면 편안해요. 물론 연습때는 베이퍼를 신지만 경기할 땐 정말 편한 축구를 신으려고 해요. 처음 프로에 왔을 땐 티엠포를 신었고 축구화는 정말 편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근데 아쉬운 점이 있어요. 시간이 흐를 수록 축구화가 계속 바뀌니까 예전에 내게 맞던 축구화가 없어져요. 그럼 새로운 축구화에 발을 맞춰야해요. 그런게 불편해요. 전용 축구화를 제작하면 편할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예전에 제 발에 맞춘 전용 축구화를 신었는데 그게 더 불편해요. 오히려 시중에 나오는 것을 신는게 편하더라고요. 내 발에 맞춰 나오는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요. 축구화에 그냥 발을 맞추는게 더 나아요. 그래서 전 멋보다는 편한 것을 축구화를 선택할 때의 기준으로 삼아요. 새 디자인, 새 모델이 계속 나오지만 예전 모델이 편하면 그걸 신는 편이에요. 그래서 신어보다 괜찮다 싶으면 여러 개 준비해서 집에 놔두죠. 나중에 그 모델이 없어질 경우를 대비해서요. 김성진 기자

05월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