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는 대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나절 동안을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고생하면서 영국에 도착했지만, 는 사실 피곤함보다 즐거움이 앞섰다. 나름대로 축구화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축구화 선진국인 유럽의 경향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게다가 영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축구화 쇼핑의 메카가 아닌가! 결론적으로 신대륙으로 신문물을 찾아 떠나는 선구자의 기분이랄까. 물론 독자들에게 미리 이야기했던, ‘축구화는 곧 축구 문화’라는 말을 증명하겠다는 사명을 길 앞에 세웠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지금부터 가 축구화와 6박 7일 동안 동고동락하며 듣게 된 이야기를 여러분께 소개한다. 런던 시내의 크고 작은 용품샵과 각 브랜드 매장을 둘러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한국과 너무나도 다른 축구화의 종류였다. 한국 매장에는 FG(Firm Ground)스터드와 HG(Hard Ground)스터드를 장착한 모델들이 대부분인데 비해서 영국, 프랑스 매장에는 거의 SG(Soft Ground)스터드 축구화만이 전시돼 있었다. 더 재미있었던 것은 중급과 하급 모델에도 SG스터드를 찾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SG스터드 축구화는 고급 축구화의 전유물 또는 선수용 축구화로 알려졌다. 그만큼 매장에서 보기 어렵고, 구매하는 이들도 매우 적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런 축구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SG스터드 축구화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계산대로 가지고 가는 소비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얼핏 복잡한 설명을 요하는 이 질문은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바로 땅, 운동장의 차이다. 한국에는 소위 흙 바닥 운동장이 보편적인 데 비해서 잔디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유럽에서는 잔디 운동장이 수두룩하다. 이러한 운동장에는 당연히 SG스터드와 FG스터드가 필요하다. 그런데 유럽 잔디는 잘 알려진 대로 푹신푹신하다 못해서 거의 진흙과 같이 무르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는 더 지지력이 좋은 SG스터드 축구화가 사랑을 받는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이 유럽에서 치러지는 EPL이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SG스터드를, 국내에서 치러지는 국가대표팀 경기에서는 FG를 선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국에서는 화려한 색상 축구화가 별로 팔리지 않는다. 이것은 영국인들의 우울한 기질과 관계가 있다. 영국에서 학창 시절을 모두 보낸 어떤 유학생은 “화려한 축구화를 신으면 악의적인 태클을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위건 애슬래틱의 조원희도 “영국에서는 날렵한 축구화보다 투박하고 믿음직스러운 것들이 선수들에게 사랑받는다”고 증언했다. 화려한 축구화를 선호하는 독자 중에서 영국 어학연수나 유학을 생각하고 계신 분은 꼭 유념하시길 바란다!

05월18일

못 다 피운 꽃, FILA 축구화

21세기 축구화 시장은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그리고 미즈노 등 몇몇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밝혔던 것처럼 20세기에는 축구화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였다. 많은 브랜드들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혹은 성공하고 더러는 실패를 맛봤다. FILA도 마찬가지였다. FILA는 1911년 이탈리아의 FILA 형제가 창업한 회사로서 초창기에는 알프스 지역 사람들에게 적합한 의류를 주로 생산했다. 이후 1970년대 초에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에 인수된 FILA는 모터 스포츠 유니폼 및 테니스 종목으로 진출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급기야 1990년대 중반 축구 종목에도 손을 뻗쳤다. 그러나 FILA는 ‘스포츠 브랜드’로서의 인지도는 높았지만 축구 쪽에서는 매우 낯선 브랜드였다.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세계적 스타들의 마음을 사로 잡아야 했고, 확실한 전략이 필요했다. 즉, 세계적 선수들에게 FILA 축구화를 착용케 해야 했다. 그 무렵 FILA 축구화를 신은 유명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시니사 미하일로비치(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세바스티안 베론(아르헨티나), 나카타 히데토시(일본), 클라우디오 레이나(미국). 하나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이다. 잘 알려진대로 미하일로비치는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겸하는 선수로서 1990년대 세계 최고의 프리킥커 중 한 명이었다. 레오스타 베오그라드에서 1992년 이탈리아 SERIE-A AS로마로 이적한 미하일로비치는 이후 삼프도리아-라치오-인터 밀란 등을 거치며 좋은 플레이를 펼쳤다. 그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에 FILA 축구화를 신고 출전해 조별 예선 이란과의 경기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 시켰다. 탁월한 패스 센스를 자랑하는 베론 역시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FILA 축구화를 신고 출전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아르헨티나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핵심적인 선수였던 베론은 특히 롱패스 정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미드필더 나카다는 1990년대 초~중반까지 나이키를 애용하다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전,후로 FIlA 축구화를 신었다. 그러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FILA 축구화를 착용하는 선수는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기능성은 알 길이 없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최고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다. FILA 축구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로고였는데 대부분의 축구화 로고는 라인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서 FILA는 축구화 양 측면에 ‘F’자를 크게 새겨 넣었다. 타브랜드에 비해서 독특한 디자인이었지만 투박하다는 평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최근까지 FILA축구화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성인용이 아니라 FILA의 이름만 쓰고 있는 형식으로 아동용 축구화가 나오고 있다. 필자인 김유석은 어린 시절 수없이 효창 운동장 담벼락을 넘었던 진정한 사커 키드다. 모두 대통령을 꿈꾸던 시절 홀로 차범근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이가 바로 그다. 축구를 풍성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05월18일

김동찬, 좋은 축구화는 골을 부른다

처음 축구를 시작했던 초등학생 시절에는 무조건 \'맨발\'로 뛰었습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길거리 축구화를 사다 주시면서 서서히 축구화의 귀중함을 깨닫게 됐죠. 제 축구화 첫 브랜드는 키카였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를게 없었죠. 당시에는 키카가 대세였으니까요. 중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아디다스와 나이키를 번갈아 가면서 신었습니다. 특별히 좋아서 신은 건 아니고 워낙 유명한 브랜드니까 믿고 신은 거죠. 그러나 어릴 때부터 축구화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곤 했어요. 워낙 발이 작아서 맞는 사이즈가 없기도 했거든요. 사이즈가 몇이냐고요? 250mm이요.(웃음) 프로에 입문하면서 처음으로 미즈노를 만났습니다. 가볍고 발에 딱 달라붙는 게 처음부터 저랑 잘 맞는 느낌이었어요. 데뷔 첫 시즌에는 나이키 토탈90과 함께 신었지만 2009 시즌이 개막하고서는 미즈노 모렐리아와 MR만 신고 있습니다. 다른 제품에 비해 가볍고 가죽도 좋고 처음 신었을 때부터 길들여져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게 좋았어요. 주위에서 저랑 잘 어울린다는 말에도 귀가 솔깃했고요(웃음). 시즌 도중에 아디다스 베이퍼를 몇 번 신어봤는데 신을 때마다 발에 물집이 잡히더라고요. 전 한번 물집나면 다신 안신기 때문에 시도를 안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참고 오래 신어야 적응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워낙 좋다고들 하니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미즈노에 만족합니다. 저처럼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선수라면 무엇보다 발이 편해야 하는데 미즈노는 그런 부분에서 저를 충족시키기 때문이죠. 이번 시즌 제가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도 좋은 축구화 덕분이겠죠.

05월18일

아디다스 프레데터 X 출시

3차원의 인체 공학적 발 모양으로 최상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옵티핏 테크놀로지는 모든 신발 소재가 가능한 한 발에 가장 잘 맞도록 해 볼 컨트롤과 움직임을 크게 발전시켰다. 또한 캥거루 가죽보다 더욱 뛰어난 내구성과 터치감의 타우루스 송아지 가죽은 자연스러운 느낌과 가벼운 무게감으로 어떤 날씨 환경 속에서도 최상의 경기력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해준다. 10번째 버전의 프레데터 익스는 생물학, 디자이너, 신발 개발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5년 이상의 연구, 개발을 통해 탄생되었으며, 이후 150명 이상의 프로 선수들과 아마추어 선수들의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 경기력과 기능, 디자인에 있어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최고의 축구화 프레데터 익스는 이근호(쥬빌로 이와타)를 비롯해 발락(독일 – 첼시 FC),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 LA 캘럭시), 마르크 판 보멀 (네덜란드 – FC 바이에른 뮌헨), 스티브 제라드 (잉글랜드 – 리버풀 FC), 로빈 판 페르시 (네덜란드 – 아스널 FC), 라울 (스페인 – 레알 마드리드 CF), 파트리크 비에라 (프랑스 - FC 인터 밀란), 사비 (스페인 – FC 바르셀로나) 등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이 신게 될 예정이다. 새로운 프레데터 익스는 11월 5일부터 전국 아디다스 매장에서 판매되며, 2010년 월드컵 공인구 컬러의 프레데터 익스는 2009년 12월 5일 부터 판매된다. 가격은255,000원

05월18일

브라질 축구화를 아시나요?

* 페널티(PENALTY) 페널티는 1970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탄생했다. 사실 페널티는 톱퍼 보다 5년 먼저 창립된 브랜드다. 페널티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건 1990년대 초다. 브라질의 명문 클럽인 상파울루FC가 1992년과 1993년에 연속으로 토요타컵 우승을 차지했는데 당시 상파울루FC 스폰서가 페널티였다. (당시 상파울루FC 선수들의 흰색 유니폼 상의 오른쪽 가슴 부위에 \'PENALTY\'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1992년 토요타컵 때 상파울루FC는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를 상대로 2대1로 승리했고, 1993년 대회에서는 호화 멤버의 AC밀란을 난타전 끝에 3대2로 꺾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토요타컵은 전세계 90개국이 넘는 나라에 생중계 됐기 때문에 페널티로서는 홍보 차원에서 더할 나위 없이좋은 기회였다. 국내에는 페널티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 특히 브라질 선수들 몇몇은 페널티 축구화를 착용한다. 톱퍼와 페널티는 아디다스, 푸마, 디아도라, 아식스, 미즈노 등의 유명 브랜드에 비해서 역사도 짧고, 인지도도 낮지만 제품의 질이 좋기 때문에 브라질 국내에서의 반응은 매우 좋다.톱퍼-페널티 외에 데스포르티(Desporte)라는 브랜드도 있는데 데스포르티는 축구화 보다는 풋살 슈즈로 명성을 얻고 있다.

05월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