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의 역작, 모렐리아 네오가 온다

  모렐리아 네오   미즈노의 야심작 모렐리아 네오가 세계 무대에 등장을 앞두고 있다.   모렐리아 네오는 기존 모렐리아의 편안함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가벼운 옷을 입었다. 미즈노 장인 정신과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기획자인 마사토시 야마구치 씨는 “단지 가볍기 만한 축구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출시를 앞둔 모렐리아 네오는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바람이 집약된 제품이다. 미즈노는 K리그 선수들 백 여명에게 직접 설문을 받았고, 선수들이 착용감이 좋으면서도 가벼운 축구화를 원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모렐리아 네오는 많은 선수의 열망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모렐리아 네오 MD  모렐리아 네오(일본산)는 가장 좋은 착용감을 보장하는 캥거루 가죽옷을 입고도 무게가 180g밖에 나가지 않는다. 모렐리아 네오 MD(인도네시아산, 내부 마감재가 조금 다름)는 170g, 한 단계 낮은 제품인 에스트렐라 네오(일본산)도 190g에 불과하다.   한국국가대표팀의 주장 박주영도 모렐리아 네오를 착용한다 그는 오는 12월 1일부터 모렐리아 네오를 신고 잉글랜드 무대를 누빈다. 들리는 후문으로는 박주영이 모렐리아 네오에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한편 ‘올댓부츠’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모렐리아 네오 시리즈를 모두 입수했다. 자세한 사진은 ‘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렐리아 네오 시리즈 정보 모렐리아 네오 180g, 279,000원 모렐리아 네오 MD 170g, 229,000원 에스트렐라 네오 190g, 199,000원 에스트렐라 네오

11월18일

역대 프레데터 베스트골(하)

  2002 MANIA TOP GOAL 지네딘 지단-200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레알 마드리드 대 바이에르 레버쿠젠 지단의 생애 최고 득점은 과연 어떤 골일까. 바로 2001/2002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바이에르 레버쿠젠전에서 터트린 환상의 왼발 발리슛이다. 장군 멍군을 부르며 1-1로 맞서던 전반 45분. 왼쪽 측면에서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올린 크로스가 상대 수비에 맞고 굴절되어 높이 솟구쳤다. 이에 페널티박스 부근에 있던 지단은 몸을 뒤로 누이며 자신의 왼발을 높이 들어 볼에 갖다댔고 당시 그가 신고 있던 매니아에 정확하게 임팩트된 볼은 레버쿠젠의 골문 왼쪽을 파고들며 결승골로 연결됐다.   2004 PULSE TOP GOAL 스티븐 제라드-2004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 리버풀 대 올림피아코스 2004/2005시즌 '이스탄불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리버풀의 챔피언스리그의 우승은 서막은 프레데터 펄스를 신은 스티븐 제라드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 최종전 올림피아코스와의 경기에서 2점차 승리를 거둬야만 16강 진출이 가능한 위기 상황이었다. 그러나 리버풀에는 위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사나이 제라드가 있었다. 그는 경기 종료 직전 2-1 상황에서 페널티에어리어에서 흘러나온 볼을 그대로 올림피아코스의 골문을 향해 찼고 그의 발을 떠난 볼은 올림피아코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2006 ABSOLUTE TOP GOAL 로빈 판 페르시-2006 아스널 대 찰턴 로빈 판 페르시는 프레데터 엡솔루트를 신고 아스날 사령탑 취임 10주년을 맞은 아르센 웽거 감독에게 멋진 선물을 선사했다. 판 페르시는 찰턴 원정경기에서 전반 32분 동점골에 이어 후반 4분 역전골까지 터트리면서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다. 특히 판 페르시는 이날 경기에서 멋진 낙하에 이은 환상적인 발리슛을 선보였고 이 골은 BBC의 이달의 골에 선정됐다. 경기 후 벵거 감독은 "판 페르시의 역전골은 기술적으로 완벽했다. 생애 최고의 골"이라며 "크로스바를 넘어갈 것 가던 볼이 구석으로 뚝 떨어져서 골이 됐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2008 POWERSWERVE TOP GOAL 라울 곤잘레스-2008 레알 마드리드 대 스포르팅 히온 프레데터 파워스워브는 라울에게 있어 뜻 깊은 축구화다. 그는 2008년 스포르팅 히온과의 맞대결에서 후반 18분 상대 골문 앞에서 사비올라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은 후 감각적인 왼발 칩샷으로 팀의 7-1 대승을 견인했다. 라울은 이듬해 스포르팅과의 리턴매치에서도 프레데터 파워스워브를 신고 2골을 넣어 디 스페파노가 가지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 역대 최다 골의 기록을 경신하는 기염을 토했다.

11월18일

역대 프레데터 베스트골(상)

프레데터의 역사 1994년 출시된 아디다스 축구화 프레데터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로 유명하다. 그만큼 많은 추억과 사연이 담겨있기 마련. 최근 영국 매치데이 프로그램인 <매치>는 프레데터 각 시리즈 별 베스트골을 선정해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과연 영예의 주인공은 누가 차지했을까. <올댓부츠>가 두 편으로 나눠 영광의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클린스만 ⓒBPI 1994 THE PREDATOR TOP GOAL 위르겐 클린스만- 1994년 미국월드컵 16강전 독일 대 벨기에 독일의 전설적인 골잡이 위르겐 클린스만은 프레데터의 첫 시리즈를 신고 1994년 미국월드컵에 참가한다. 그는 벨기에와 16강전에서 전반 10분 하프라인 근처에서 루디 푈러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은 후 왼쪽 페널티 박스 18미터 부근에서 감각적인 논스톱 슈팅으로 당시 야신상을 수상했던 프로이돔메 골키퍼의 손끝을 꿰뚫었다. 이 골은 프레데터 시리즈의 우수성을 증명한 첫 계기로 평가 받고 있다.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 ⓒBPI 1995 RAPIER TOP GOAL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1995년 유벤투스 대 스테우아 부큐레슈티 지금은 아디퓨어 시리즈를 애용하고 있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이지만 그의 전설은 프레데터와 함께 시작됐다. 델 피에로는 1995년 8월 18일 홈에서 열린 부큐레슈티와 맞대결에서 전반 39분 왼쪽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상대 수비수를 앞에 두고 감각적인 오른발 감아차기로 그림 같은 골을 터트린다. 이 골은 통산 122번째 득점으로 델 피에로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명장면이다. 폴 개스코인 ⓒBPI 1996 TOUCH TOP GOAL 폴 개스코인- 유로 1996 잉글랜드 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의 악동 폴 개스코인 역시 프레데터 시리즈를 애용한 선수로 유명하다. 유로 1996을 앞두고 잉글랜드 현지에서는 개스코인의 음주 논란이 한창이었다. 홍콩의 한 술집에서 술을 입에 퍼붓고 있는 개스코인의 사진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 그러나 개스코인은 유로 1996 두 번째 경기였던 스코틀랜드전에서 환상적인 볼 트래핑에 이은 발리슛 득점으로 항간의 논란을 불식시켰다. 특히 그는 골뒤풀이로 그라운드 위에 드러누워 동료들이 퍼붓는 물을 마치 술인냥 들이마시며 과거의 논란을 재현하는 대인배 기질도 선보였다. 지단의 축구화 엑셀레이터 1998 ACCELERATOR TOP GOAL 지네딘 지단- 1998 프랑스 대 노르웨이 프레데터 악셀레이터의 대명사는 바로 지네딘 지단이었다. 그는 1998년 마르세유에서 열린 노르웨이와 친선경기에서 축구역사에 남을 최고의 골을 터트렸다. 유리 죠르카예프가 사이드라인에서 골문 앞으로 길게 내준 볼을 이어 받은 지단은 단지 오른발로 하나로 상대 수비수를 바보로 만든 환상적인 볼트래핑에 이어 감각적인 슈팅을 선보이며 3-3의 팽팽한 흐름을 깨트렸다. 이 골은 지단이 개인적으로 두 번째로 좋아하는 득점으로 유명하다.

11월18일

박주영 축구화에 비밀이 있다고??

  “뭐야 좀 이상하잖아!”   UEFA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아스널과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경기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박주영이 선발 출전해서가 아니다. 박주영의 축구화 때문이었다.   박주영의 축구화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축구화였다. 모델 자체가 새로운 게 아니라, 조합이 달랐다. ‘어퍼와 아웃솔(밑창)이 서로 다른 제품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퍼는 웨이브컵 같은데, 아웃솔은 모렐리아에 가까워 보였다. 게다가 스터드도 FG와 SI(SG)가 함께 들어가 있었다.   의문은 금방 풀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박주영의 축구화는 일종의 ‘잡종’이었다. 미즈노의 한국 파트너인 덕화스포츠의 이상일 대리는 “박주영 선수의 축구화는 일본에서 특별히 제작된 축구화”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박주영의 축구화 어퍼는 웨이브컵이었고, 아웃솔은 모렐리아2였다. 이 대리는 “선수의 요구에 따라 일본 본사에서 직접 제작됐다. 스터드도 선수가 원하는 대로 배열, 구성했다. 이 부분은 수작업으로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다른 제품을 ‘섞는’ 일이 드물지만, 세계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리오넬 메시가 F50어퍼에 고정 스터드를 붙여 신기도 했고, 디디에 드로그바도 머큐리엘 베이퍼 슈퍼플라이2에 슈퍼플라이1 아웃솔을 사용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박주영은 축구화에 민감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선수도 많다. 김치우(상주)는 “신제품이 가장 좋은 거 아니냐?”라고 되묻기도 했었다.

11월09일

축구계의 '얼리어답터' 곽태휘

  남들보다 조금 늦은 고등학교 때 처음 축구를 시작했어요. 이 때 신었던 축구화는 키카였죠. 다들 키카 신지 않았었나요? 저를 포함한 어린 선수들에게 제일 흔했던 브랜드였어요. 나이키 같은 외국 브랜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시기였어요. ‘나이키 축구화라는게 있다’고만 들었지 직접 보지는 못했거든요. 돈을 주고 살 형편도 안됐고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그런데 키카가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비싸지 않으면서 품질이 좋았어요. 그 당시 저희에게는 키카가 딱 맞은 셈이죠. 프로에 입문(2005년)하면서 처음 신었던 축구화는 나이키 토탈 90입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지금은 나이키 머큐리얼 베이퍼를 신어요. 본격적으로 나이키로부터 스폰을 받기 시작하면서 베이퍼로 정착했죠. 처음에 신을 때는 발에 물집이 많이 잡혔어요. 그런데 오랫동안 신었더니 금방 발에 익숙해지더라고요. 지금은 편해요. 발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랄까? 가벼워서 좋아요. 축구화에 대한 징크스는 없어요. 매년 기능이 보완되면서 나오기 때문에, 나오면 바로 교체하죠. 새 축구화로 바꿔요. 그래서 징크스는 없어요. 그런 걸 믿지도 않고요. 축구화 관리 노하우도 없어요. 요즘은 워낙 잘 만들어져 나오잖아요. 특별한 관리가 없어도 된다는 말이죠. 그냥 걸레로 한 번 닦고 잘 말리는 정도입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후배들을 동원해 축구화 관리를 했습니다. 그 때는 다 그러지 않았나요? 후배들을 시켜서 솔에 구두 닦는 약을 묻혀 ‘빡빡’ 닦게 했죠. 지나고 보니 이 것도 다 추억이네요.(웃음)

11월07일

유상철이 축구화 '마루타'였다고?

초등학교 4학년 처음 축구를 시작했다. 그 때는 시장에서 파는 ‘보세’를 신었다. 질이 굉장히 안 좋아서 맨땅에서 몇 번만 차면 고무 뽕이 금방 닳았다. 형들의 ‘진짜’ 축구화가 내는 ‘딱! 딱!’ 소리가 부러워서 고무 뽕에 나사를 끼우고 다닌 적이 있다. 5학년 때에는 당시 큰 인기를 누렸던 서경 축구화를, 6학년 때부터 키카를 신고 본격적으로 브랜드 축구화를 접하기 시작했다. 키커는 당시에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비싸지 않으면서 품질이 좋은 편이었다. 키카를 주로 신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푸마를 한번 신은 적이 있다. 삼촌께서 일본에 가서 일제 푸마 축구화를 사오셨다. 처음 신는 데 아주 좋고 이런 건 잘 못 느꼈다. 그런데 유명 축구화를 신었다는 기분 때문인지 첫 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했다. (웃음) 1994년 프로에 입문해서 1년 동안은 구단(울산)이 지급하는 축구화를 신었고, 1995년 다이너스티컵 국제축구대회 국가대표 경기부터 나이키가 국내에 들어와 계약을 맺고 '티엠포’를 신기 시작했다. 제품이 중국에서 들어온 탓에 지금처럼 품질이 좋지 못했다. 한번 신어도 축구화 가죽이 흐물흐물해졌다. 발 뒤꿈치도 쉽게 까졌다. 1996년도부터 이탈리아에서 만든 나이키 제품이 들어왔다. 이후에 몰라보게 좋아졌다. 우리 세대가 일종의 마루타였던 셈이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나이키 티엠포를 신고 뛰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선 나이키 토탈 90을 신었다. 까만 바탕에 은색 무늬가 들어간 축구화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키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축구화였던 것 같다. 나이키를 신고 좋은 성적을 얻었다. 무거운 걸 신어야 묵직한 느낌이 들어서 경기가 잘 된다고 생각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 가벼운 걸 선호하는 선수가 있다. 나는 선수 시절 개인적으로 ‘토탈 90’과 같은 가벼운 축구화를 선호했다. 2002 월드컵을 마치고 나이키와 계약 조건 문제로 아디다스로 갈아 탔다. 이전부터 바꿔볼까 생각을 했었고 그때 아디다스가 홍보를 잘하기도 했다. 내 발 사이즈를 재서 딱 맞는 축구화를 신게 해줬고, 소위 '혓바닥'이라고 하는 텅(Tung) 부분에 내 이름과 번호를 새길 수 있었다. 이름은 ‘유비’라고 적었다. ※ 감독 유상철이 후배들에게 건네는 조언 요새 축구화를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가벼우면서도 기능이 너무 좋다. 코치들과 우스갯소리로 ‘선수 때 이런 거 신었으면 날라 다녔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자신의 발에 맞는 축구화를 신어야 한다는 점이다. 경기장에서 경기에 신경을 써야지 축구화에 신경을 쓰면 안 된다. 나도 아디다스로 바꾸고 나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멋도 좋지만 자신한테 맞는 신발을 찾길 바란다.

10월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