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12 공인구, 탱고12 공개

  유로 2012의 공인고 탱고12가 전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3일 새벽(한국시간)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12 본선 최종 조 추첨이 진행된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대회 공인구 아디다스 ‘탱고 12(Tango 12)’를 공개했다. ‘탱고 12’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 11번째 공인구다. 1980년 탱고 리버 플레이트, 1984년 탱고 문디알, 1988년 탱고 유로파의 역사를 잇는 탱고 시리즈의 4번째 주인공이기도 하다. ‘탱고 12’는 1980년 대 초부터 월드컵과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사용되었던 탱고 축구공의 클래식한 디자인에 개최국,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국기를 상징하는 컬러를 가미시켜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삼각형 패널에 새겨진 3개의 그래픽은 현대 축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화합, 경쟁, 열정의 의미를 개최국의 전통적인 종이 예술 문양으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고전적인 탱고 디자인은 시간을 거스르는 아름다움을 모던하게 재해석함으로써 오늘날 세계적인 축구 스타일을 표현해 냈다. 또한 안정적인 슈팅을 위해 패널을 혁신적인 고열 접합 방식을 통해 강력하게 결합시켰다. 패널 표면의 미세 특수 돌기 구조는 발과 공 사이에 환상적인 그립감을 제공해 어떤 환경 속에서도 공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공 안쪽에는 우븐 모양의 공 골격이 되는 틀(carcass)과 새로운 블래더(Bladder: 공기를 주입함으로써 부력을 발생시키는 장비)가 적용돼 어떤 날씨, 환경 속에서도 공기 보유성을 증가시키고 수분 흡수율을 줄여 공의 전달력 및 정확도를 향상시켜 준다. ‘탱고 12’는 지난 2년 이상의 기간 동안 8개 국가의 유망 선수 및 프로 선수들의 참여와 강도 높은 연구실 테스트를 거쳐 개발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제시한 기준을 훨씬 넘어선 테스트 횟수로 진행됐고, 지금까지 생산된 아디다스 공 중에서 가장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12월07일

[일본탐방] 카모의 승부수, 크래프츠맨 센터

  일본 축구용품 시장의 공룡인 카모(KAMO)가 미래를 위해 다시 한 발을 내디뎠다. 오사카 시내에 있는 카모 에스타디오점을 찾았을 때, 전에는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었다. 2층 매장 한켠에 미싱기계와 압착기 그리고 가죽 세공기까지 갖춰져 있었다. 바로 크래프츠맨 센터였다. 아디다스와 합작으로 신발을 구매해서 자신의 발에 맞게 손질하고, 꾸미고, 수리까지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현재 크래프츠맨 센터는 오사카점과 사카점에 설치돼 있다.  대지진(2010년 11월) 이후 일본 경제가 침체기를 걷고 있는 순간에도 카모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축구화를 파는데 그치지 않고 수선과 커스터마이징(취향에 맞도록 축구화를 변형하는 것)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줬다. 카모 그룹 요시노리 니시마타 부회장은 “이제 그저 파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소비자의 욕구에 한 발 더 다가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크래프츠맨 센터에는 아디다스 명장 자격증을 지닌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에스타디오점 점장인 마사후미 아키노리는 "아직 시작한지 얼마안돼서 하루에 20명 정도 이용하는 정도다. 하지만 이제 서서히 이용자가 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큰 기대를 걸고 있다"라고 했다. 에스타디오점에는 일일 평균 400명 정도가 물품을 구매하고 있는데, 크래프츠맨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점점 늘 것이라는 확실한 자신감이었다.   아키노리 점장의 자신감은 구체적인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 매장에 비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키노리 점장은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 매장이 카모 내에서 가장 많은 축구화를 팔고 있고, 모든 업체를 통틀어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일본 인들은 직접 신어보고 사는 방법을 선호한다"라고 했다. 커스터마이징이 축구화 시장에 화두로 떠오른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모든 용품업체들이 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고 있다. 카모는 이 순간에 한 발 더 앞선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의 주도권에 성큼 다가섰다. 따라가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카모는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길을 여는 사람이 가장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기 마련이다.  

11월29일

일본 축구계의 공룡기업 카모, 40년 외길 인생의 결정체

  [올댓부츠=오사카]  일본 주요 도시에 가면 심심치 않게 ‘카모(KAMO)’라는 이름의 ‘축구백화점’을 볼 수 있다. 전국 17개 매장에서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의 국가, 클럽팀 유니폼을 비롯해 수많은 종류의 축구화 그리고 관련용품들을 취급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카모에 없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할 수 있다. 카모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다. 1997년 ‘도쿄 대첩’ 당시에 일본 대표팀을 이끌다가 이민성의 한 방에 밀려 사퇴한 이가 카모 슈 감독이 생각난다. 카모는 카모 슈의 친 동생 카모 겐이 1968년 오사카에 처음으로 매장을 세운 이후 40년이 넘게 외길을 걸어왔다. 그 동안 매장은 17개로 늘었고, 연 매출 60억엔(약 900억 원)에 달하는 공룡기업이 됐다. 2011년 현재, 카모는 단순한 축구용품이 아니다. 4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축구의 모든 부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카모와 일본 제1의 에이전트사인 JSP,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인 SOL,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음식점 겸 바(bar)인 ESTADIO 그리고 축구용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MARACANA가 카모그룹을 이루고 있다. 카모 겐 회장에 이어 카모 그룹의 서열 2위로 실질적으로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요시노리 니시마타 부회장은 ‘스포탈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성공의 비결을 살짝 밝혔다. 그는 선견지명과 포기하지 않는 뚝심 그리고 변화를 언급했다. 세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지면서 카모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뚝 섰다는 이야기였다. “1968년 처음으로 매장을 세웠을 때,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어떻게 축구용품만 취급해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축구만 해온 것이 오히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점이 됐다. 40년 동안 외길을 걸은 것이 우리를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대지진(2010년 11월) 이후 일본 경제가 침체기를 걷고 있는 순간에도 카모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CRAFTSMAN’ 센터다. 축구화를 파는데 그치지 않고 수선과 커스터마이징(취향에 맞도록 축구화를 변형하는 것)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줬다. 니시마타 부회장은 “이제 그저 파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소비자의 욕구에 한 발 더 다가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카모의 명성은 일본 영토를 넘어섰다. 세계적인 용품사인 나이키와 아디다스 그리고 푸마는 모두 카모를 VIP로 대접하고 있다. 니시마타 부회장의 집무실에는 40주년을 기념해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보낸 선물이 진열돼 있다. 해외매장에 대한 요구도 있다. 홍콩은 카모의 입점을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을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쌓인다. 철저하게 준비된 과거는 현재에 큰 힘과 가능성으로 살아날 수 있다. 카모는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며 그것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카모의 성공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한국 축구시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형은 한국 축구에 눈물을 흘렸지만, 동생의 꿈은 한국에 영감을 주고 있다.

11월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