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 : 내 아들이 바르셀로나 응원하는 꼴 못 봐요.

  1.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曰 "우리 아들이 바르셀로나 응원하는 모습 절대 못 봐" (불가능하다고 고개 내젓는 단호우박)   Q. 아들이 만약 바르셀로나를 응원하겠다고 한다면? A.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걘 내 아들이에요 그건 불가능해요   Q.근데도 '아빠 나 꾸레가 될 거야' 라고 한다면? A. 근데도 바르셀로나를 응원하겠다고 조른다면 그땐 어쩔 수 없죠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둬야죠 뭐 근데 그렇다고 절대 캄푸 누에 데려다주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또 제가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하도록 아들에게 강요하는 건 아니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2. 아빠, 베일 보다 빨라?   "아들은 학교를 갔다오면 저에게 달려와서 쫑알쫑알떠들면서 큰 웃음을 줘요 저번에는 갑자기 '아빠, 베일 삼촌이 아빠보다 달리기 잘 하지?'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대답해줬죠 '에이~ 아빠보다 빠른 사람은 세상에 없다니까?' 라구요   그랬더니'그치?아빠 근데메시 아저씨가 아빠 오른발 가지고 싶다고 했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대체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듣고 오는거냐고 물어보니까 학교에서 친구들이 그랬대요 아들이 그럴 때마다 웃겨죽겠어요 진짜"     출처: I LIKE SOCCER (아이라이크사커) Today My Life Begins님

07월01일

[오피셜] 정우영, 내년 1월 바이에른 뮌헨 이적 확정

  인천 유나이티드 U-18팀 대건고의 측면 공격수 정우영(18)이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  인천은 30일 “정우영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 인천은 정우영과 관련해 유럽 여러 클럽에서 제의를 받았는데 그 중 가장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바이에른 뮌헨의 제의를 거절하기 힘들었다. 정우영의 더 큰 성장을 바라면서 이번 독일행을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밝혔다.  이어 “정우영은 2018년 1월경 바이에른에 합류하게 되며 계약기간은 4년 6개월”이라고 덧붙였다. 계약 성사에 앞서 정우영은 지난 5월 인천과 현재 소속교인 대건고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독일로 건너가 바이에른을 비롯한 총 3~4개의 분데스리가 클럽에서 테스트를 통해 철저한 검증을 받았다. 그 이후 공식적인 영입 제의 공문을 수 차례 보내는 등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바이에른과 계약이 이루어졌다.  정우영은 인천 유소년 시스템이 만들어 낸 걸작이다. 인천 U-12팀을 시작으로 U-15팀 광성중을 거쳐 현재 대건고에서 활약하고 있다.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지녔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아왔다.  180cm, 67kg의 체격을 지닌 정우영의 주 포지션은 측면 공격수다. 중앙 및 공격형 미드필더도 두루 소화 가능할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하고 수준급의 기술, 센스, 스피드 등을 두루 지니고 있는 전천후 공격수다.  이번에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에 성공한 정우영은 “인천과 대건고 그리고 많은 주변 분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통해 내가 꿈꾸던 일이 현실로 이뤄지게 됐다. 매우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적인 빅 클럽으로의 도전이라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면서 “꼭 훌륭한 선수로 성장해 나를 키워준 인천과 대한민국을 두루 빛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내비쳤다.  독일 진출을 확정짓게 된 정우영은 오는 7월 22일부터 8월 3일까지 경상북도 포항시 일대에서 펼쳐지는 ‘2017 K리그 U18 챔피언십’ 대회에 대건고 소속으로 출전하여 자신의 기량을 뽐낼 예정이다.   출처 : 스포탈코리아

06월30일

마렉 함식이 나폴리의 팬들에게...

[ 마렉 함식이 나폴리의 팬들에게... ]     마렉 함식 曰   나폴리에서, 우리는 단 한명의 감독을 보유한게 아닙니다. 우리는 300만명의 감독을 보유중이죠.   모든 남성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들은 나폴리에 대한 최고의 방법을 알죠. 모든 4살짜리 꼬마들은 경기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많은 골을 득점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정원을 관리하는 모든 90살의 여성들은 왜 우리가 포메이션을 바꿔야하는지도 설명할수 있습니다.   그 기분과 열정이 그들의 피 안에 있습니다.   나폴리에선, 축구가 마치 종교와 같습니다. 그리고 산 파울로 경기장은 교회와 같죠.   나폴리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메이저 클럽입니다. 그리고 나폴리 인들은 일원이 된 느낌을 받습니다.   축구란 그들이 일어나면서부터 생각하는 것이고, 하루 종일 대화하는 것이며 그들이 매일 밤마다 꿈꾸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축구는 지금까지 29년간 제 인생과 함께 해왔습니다.    1994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은 제가 살던 도시에서는 밤 11시에 방영됬었죠. 제 부모님은 하루종일 일을 하느라 피곤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저 혼자 거실에서 티비 앞에 앉아 시청했죠. 슬로바키아의 티비는 많은 브라질 경기를 보여주었어요.   브라질은 베베투와 호마리우라는 두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었죠. 저는 그들에게 매우 홀렸어요. 드리블, 패스, 스피드. 저는 가능한 한 그들의 모든 경기를 봤죠.   브라질리언들의 축구는 제가 슬로바키아에서 보아왔던 축구나 유럽의 큰 경기와는 달랐습니다.    훨씬 독창적이고 자유로웠어요.    전 그때 3년동안 축구를 하고 있었죠. 저희 부모님은 제가 경기에 뛰기도 전에 저에게 축구화를 사주셨어요.   제가 경기에 뛰었을때 감독님은 저를 미드필더로 투입시켰죠. 그리고 저에게 종종 공격하러 나가라고 말하셨어요.   그리고 그 후 저는 포지션을 바꾸지 않았어요. 저는 지금도 10번 롤을 사랑합니다. 창조적인게 허락되고 경기장 전체를 보는게 가능해졌죠.   제가 티비를 보았을때 저는 제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들을 찾을수 있게 되었죠. 저는 지단과 네드베드의 경기를 보았죠.   그들은 빨랐어요. 하지만 아주 빠르지는 않았죠. 마치 저처럼 말이에요. 그들은 훌륭한 패서였고 경기의 흐름을 아주 잘 파악했죠.   저는 그들처럼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있던 모든 팀에서 그 포지션을 맡았죠.   저는 15살때 집을 떠났어요. 저는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 갔고 슬로반 브라티슬라바란 팀에 들어갔죠.   그 팀은 제가 그때까지 뛰던 팀들보다 훨씬 크고 높은 레벨의 축구를 하고 있었죠.   하지만 전 거기서 오래 있진 않았어요, 2년 뒤 저는 800km 떨어진 곳으로 옮겼죠. 새 삶, 새 축구, 새 나라로 갔죠- 이태리로요.   저는 집으로 가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프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꿈에 더 가까워졌어요.   브레시아는 이태리 북부의 작은 도시에요. 하지만 전 적응하는데 그리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어요. 바로 집처럼 느껴졌죠.   사람들은 친절했고 환영받았죠. 저는 소속감을 느낄수 있었어요.   저는 브레시아에서 1군 데뷔를 했고 제가 이전까지 했던 축구와는 차원이 다른 퀄리티의 축구를 경험했죠.   3년 후 저는 다시 팀을 옮겼어요. 처음과 같은 기분이 들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탈리아에 계속 남았으니까요.   2007년 브레시아는 저를 나폴리에 팔았어요.    저의 나폴리에서의 첫번째 날 - 에세키엘 라베찌의 첫번째 날이기도 한 날에 팀은 저희들에게 상 파울루 경기장의 주변을 보여줬어요.   그리고 그 후 기자회견장에서 저희를 소개했죠. 저는 경기장에 붙여져있는 나폴리의 여러 레전드들의 사진을 봤어요.   마라도나, 페레라, 부스콜로티 같은 선수들 말이에요. 저는 세리에 A 우승 트로피와 코파 이탈리아 우승 트로피도 봤어요.   그것은 나폴리가 특별한 도시이자 나폴리라는 클럽이 특별한 클럽이란걸 이해하기에 충분했어요.   제가 계약한 후 며칠 안되서 집을 찾고 있을때, 제가 만난 사람들 모두가 이미 제 이름과 제 스토리를 알고 있다는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어요.   전 믿을수가 없었죠. 제가 브레시아에서 느꼈던 사랑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였어요.   브레시아에서 저는 꼬마에 불과했고 아무도 저를 제대로 알진 못했죠. 하지만 나폴리에서는 나폴리 팬과의 미팅 없이는 커피를 얻지 못해요.   '나폴리 팬'이란 말은 나폴리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만약 당신이 나폴리 사람이라면 당신은 나폴리 팬인거죠.   몇 년 후 저는 나폴리 팬들의 열정을 이해했어요. 우리가 2012년에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했을때 우리가 해낼수 있다는걸 보았어요.   그것은 나폴리가 25년만에 획득한 우승 트로피였죠. 우리가 로마에서 이긴 후, 저는 도시의 또 다른 이면을 보았어요. 그것은..미쳤었죠.   제 생각엔 미쳤었다라는 말이 그 광경을 묘사하기에 최고의 방법인것 같네요. 정말로, 정말로 좋은 뜻의 미쳤다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로마에서 돌아왔을때 아파트의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어요. 도시의 모든 창문에서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죠.   그건 마법이였어요. 당신이 여기 승리한채로 돌아온다면 이 세상 어느 곳보다도 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수 있는 곳이죠.   왜냐면 단지 우리들의 승리는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도시,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승리니까요. 그것이 더 특별하게 해주는 것이죠.   상 파울루 경기장의 스탠드에서 챔피언스 리그 응원가가 울려퍼지는것. 그것은 저에게 있어 아주 완벽한 소리죠.   축구는 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에요. 그리고 10년간 나폴리를 위해 뛸수 있다는것은 저에게 있어 아주 큰 영광이에요.    하지만 전 축구를 넘어 그 이상으로 여기에 남고 싶습니다.    나폴리에서 저는 지역사회의 일환이자 가족의 일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폴리를 제 마음속 매우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주죠.   돈이나 트로피 따위보다 제가 더 필요한 것은 나폴리입니다.   제 마음속엔 무언가가 필요하죠.   그리고 그것을 제게 줄수 있는것은 나폴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영원히 나폴리에 감사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06월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