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홍의택 기자= 과거의 영광까지 운운할 필요도 없다. 불과 7개월 전, 자국 리그 우승컵을 들었다. 그런데 올 시즌 15라운드 현재 14위다. 2014/2015 우승 당시 시즌을 통틀어 세 번밖에 지지 않았거늘, 이미 벌써 8패나 했다. '우리가 알던' 첼시가 아니었다.
그랬던 이들이 조 1위로 16강에 안착했다. 무엇보다 경기력이 돌아왔다는 것이 긍정적이었다. 첼시는 10일(한국 시각)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2015/2016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G조 6라운드에서 포르투에 2-0으로 완승했다. 윌리안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간 순간 첼시도, 무리뉴도, 로만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첼시의 경기력은 올 시즌 들어 손에 꼽을 만큼 내용이 좋았다. 풀려 있는 듯한 나사를 바짝 조인 모습이었고, 팀 전체가 적절한 긴장감 속에 탄력 있게 움직였다.
먼저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수비다. 9개월에 달하는 정규 리그가 아닌 바에야, 단기 대회는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강팀마저 속속 무너지는 판국에 이들의 지위를 유지해주는 것은 탄탄한 뒷문인 경우가 많다. 제 아무리 상대 골문을 뚫어내도, 우리 골문에 가해지는 타격을 피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안티 풋볼'이 튀어나온 것도 이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첼시는 앞선에서부터 흐름을 장악했다. 코스타, 오스카, 아자르, 윌리안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인디-마이콘-마르카노 셋을 최후방에 둔 채 후방 빌드업을 하던 상대의 급소를 물었다. 포르투는 패스 활로를 분산하며 가능성을 높였으나, 한꺼번에 움직인 첼시의 접근 방식은 상대를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래 캡처는 포르투가 겪은 당혹스러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는 볼 터치를 앞쪽으로 해두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야 공격의 속도를 올리기도, 패스의 강도를 높이기도 편하다. 하지만 마이콘은 오스카에게 걸릴 것을 염려해 또다시 뒤로 터치해뒀다. 그런 장면 다음에 나오는 백패스, 횡패스는 패스 개수만 늘려줄 뿐,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중앙에서 넘어온 횡패스가 약했다기보다는, 첼시 공격진의 충실한 압박을 칭찬할 만했다.
사방에서 방해가 이어지자, 온전히 전방 시야를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상대 1선을 뚫어내면 마티치나 하미레스가 등 뒤에서 달라붙었다. 편한 자세로 볼을 받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며, 다음 패스를 이어갈 동료를 찾는 데도 힘겨웠다. 하릴없이 개인 기술을 쓰는 등 모험적인 플레이도 나오곤 했는데, 후방에서 이만큼 죄악시되는 행동도 없다.
포르투는 후퇴해 골키퍼 카시야스에게로 볼을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수비수들은 이미 상대 공격진에 잡힌 상황, 위기를 벗어나고자 롱킥을 시도한다. 볼이 떨어지는 지점은 중앙선 언저리다. 브라히미나 코로나를 향하지만, 첼시의 마티치, 존 테리, 주마 등이 호시탐탐 노린다. 개개인의 신장 면에서도, 볼 진행 궤적을 전방에서 바라보는 신체 방향도 첼시가 한결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 지공에 맞선 안정감도 물론이다. 첼시는 측면 수비 아스필리쿠에타, 이바노비치가 제 자리를 지킨 경우가 많았다. 측면 뒷공간을 내주지 않은 상황에서 중앙 수비 또한 중심을 잘 잡았다. 그덕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측면을 커버하느라 넓게 움직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더욱이 윌리안 등이 내려와 분담하는 수비력도 그 재미가 쏠쏠했으니. 아래 캡처처럼 몸으로 비벼주면서 상대를 방해하면 주위에서 관망하던 마티치-하미레스가 쓸어담는 식의 모범적인 사례가 여럿 나왔다.
공격적인 작업도 빼어났다. 아자르의 패싱력이 살아나면서 원톱 코스타가 할 일도 한층 늘었다. 첼시와 포르투, 두 팀의 공격 무게감은 원톱의 유무에서 갈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코로나-브라히미가 제로톱처럼 움직였던 포루투에 반해, 첼시는 코스타가 상대 수비를 두세 명씩 잡아놨다. 볼을 지키고, 연결하면서 2선 동료들이 가담할 시간을 벌고, 그 다음 상황을 연출했다(하단 캡처 참고).
그뿐 아니다. 코스타는 직접 공간을 창출해 볼을 따라 나가는 움직임도 탁월했다. 절묘하게 라인을 타며 오프사이드 트랩을 부쉈고, 속도를 붙여 돌진했다. 피니쉬에는 아쉬움을 남겼으나, 가속도가 오른 상태로 완벽하게 터치하고, 임펙트를 주기란 쉽지 않은 일. 이러한 과정을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절반 이상의 성공이었다.
윌리안의 골로 2-0 리드를 만든 뒤에는 더 쉬워졌다. 상대는 라인을 올렸고, 아자르의 개인 능력으로 뒷공간 털이에 나섰다. 보통 세트피스 수비 시, 발 빠른 공격수 한 명을 올려 역습의 첨병으로 삼는 것과 유사했다. 아자르는 지체없이 패스를 건네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직접 욕심을 내기도 했다. 골포스트를 맞춘 것이 개인적으로는 두고두고 아쉬울 상황이었다.
문제는 연속성이다. 흐름을 이어가 리그에서도 반등하느냐가 관건이다. 무리뉴 감독은 14라운드 토트넘전 무승부 직후 "지금 경기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앞으로 10경기 연속 무패도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드러냈으나, 고대했던 12월을 AFC 본머스전 패배로 시작했다.
리그는 10위권 밖에서 놀면서 챔피언스리그는 8강 넘어 4강, 그리고 우승까지 노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2011/2012 챔피언스리그 우승 당시처럼 EPL에서도 어느 정도는 균형을 맞춰야 추진력 얻기가 수월할 터.
이번 주말 상대는 '리그 선두' 레스터 시티다. 재밌는 한 판이 되지 않을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SPOTV 중계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