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월드컵 예선 득점왕, 94 아시안컵 예선 득점왕, 96 아시안컵 득점왕, 98 아시안 게임 득점왕
다에이의 전성기는 94년에서 98년 사이 정도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개인적인 전성기와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시절이 약간 겹칩니다.
이 당시 다에이의 이란 국대에서의 모습은 가히 '초인'이었으며 ('우리들의 필드'에서 등장하는 표현)
별반 대단한 대회도 아닌 방콕 아시안게임까지 달려와서 기어코 득점왕을 먹는걸 보면
'국대 득점기록의 호날두' 라고 칭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149경기, 109골)
한국 상대로 꽂은 4골이나 일본 상대로 플옵에서 쳐박은 헤딩골 등등을 보아도
동아시아 중동 가릴 거 없이 좋은 활약을 보이심
준수한 드리블과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스피드, 타점 높은 헤딩, 192cm의 무지막지한 피지컬, 골 그물망을 찢어놓을 정도의 슈팅...
등등 당시 다에이의 모습은 도저히 아시아권에서는 막을 수 없는 괴물 스트라이커였고
이 시기에는 다른 아시아권의 스트라이커 알 자베르, 황선홍, 미우라 등에 비견해도 한 클래스 위의 선수였습니다.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여 괜찮은 스트라이커 재목 정도로 평가되었는데
과도한 이란 국대 차출과 다른 페르시안에이스들이 그래왔던 것 처럼 이란 선수의 무덤 바이에른뮌헨으로 가게 되어 결국 분데스 커리어를 접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