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다시 보기힘든 '축구,이과,문과' 마스터했던 인물.jpg | |
2020-01-18 / 추천 | 성수동선출(medssi10) |
[역사상 다시 보기힘든 '축구,이과,문과' 마스터했던 인물.jpg]
<소크라치스 (1954년 2월 19일~2011년 12월 4일)>
70~80년대를 세계를 풍미한 브라질 황금 4중주의 일원인 월드 클래스 반열의 미드필더 킬패스와 플레이메이킹 능력이 뛰어났으며 193cm에 육박하는 거구답게 피지컬 또한 대단했으며 양발 사용에 능했다. 더 대단한건 그의 이색 경력인데 소크라치스는 '의과 대학 출신'으로 의학 박사 학위 및 전문의 자격증까지 보유 그리고 이름에 걸맞게 철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소크라치스의 아버지부터가 의사 겸 철학자, 말 그대로 부자지간이 엄청난 지식인)
또한 소크라치스는 70~80년대 브라질의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0005.html) 소크라치스는 은퇴 후 소아과 의사로 지내왔으며 간간히 언론사에 축구 칼럼을 기재하거나 축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여담으로 소크라치스의 동생인 '하이' 또한 축구 선수였으며 형의 뒤를 이어 브라질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에서 활약했다.
#소크라치스에 관한 일화
1982년 11월은 절정이었다. 선수들은 “11월15일에는 투표하자”는 글귀를 달고 달렸다. 그들은 여전히 공을 다투며 달리고 있었지만, 브라질 국민이 거기서 본 것은 온몸으로 휘둘러대는 ‘민주주의 깃발’이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주의의 물꼬는 터지고 몇 년 뒤 군부독재는 종식됐다. 눈물로 달렸던 1982년 그해, 코린티안스는 상파울루주의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민주주의는 과연 효율적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경구 “더 좋아진 나라에 내 골을 바치리라”가 실현되는 순간이었으니, 소크라테스는 당연 이때를 “내 생애 가장 완벽한 순간”으로 꼽았다. 민주주의라는 결승골.
#소크라치스가 남긴 명언
"나는 마시고, 피고, 생각한다."
출처 : 에펨코리아 작성자 : 라스카.0._[원글보기]https://www.fmkorea.com/best/26128931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