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계 최고의 유망주 스카우트 파동 요약썰.txt
2020-05-08   /   추천   체대입시생(genie2147)

[한국 축구계 최고의 유망주 스카우트 파동 요약썰.txt]

 

(왼쪽 차범근, 오른쪽 슈팅을 때리는 김종부)

 

- 김종부는 당시 차범근 후계자로 불리던 한국 축구계 최고의 유망주 

- 당시 여러 팀이 고려대 재학 중이던 김종부를 노렸으나 김종부는 자신을 지도했던 이차만 감독이 있는 대우로 가고 싶었음 

- 근데 고려대는 김종부를 현대로 보내고 싶어 함 

- 그래서 고려대는 1986년 3월 29일, 현대에 몰래 연락을 해 김종부를 만나 계약하라고 부추김 

- 이 전화를 받은 현대 관계자가 고려대로 달려왔지만 현대가 김종부 만난다는 소식을 들은 대우 역시 관계자 급파해 이 만남을 저지함

  

- 고대는 여기서 포기 않고 다시 한번 현대랑 김종부 만남을 주선함 

- 현대와 고려대가 계획한 디데이는 1986년 3월 30일, 청주에서 현대와 대우의 개축 경기가 잡힌 날이었음 

- 30일 오전 현대는 김종부 스카우트 팀을 파견해 서울 한 호텔방에 협상 테이블을 차렸고 고려대 협조로 김종부와 김종부 매형을 만남 

- 현대는 온갖 혜택을 제시하며 김종부를 설득하려 했으나 김종부는 자신이 계약서에 사인하려면 먼저 이차만 감독을 만나 상황을 얘기해야 한다고 버팀 

- 현대는 이차만 감독이 있는 청주로 김종부를 직접 보내면 계약이 틀어진다 생각해서 당시 스카우트 팀에 있던 김호곤 코치와 김종부 매형을 청주로 보냄

- 김호곤 코치와 김종부 매형이 같이 청주에 나타나자 이차만 감독은 시발 니들이 왜 같이 와? 눈치를 까고 둘은 “종부 현대로 갑니다” 한마디 남기고 바로 다시 서울로 ㅌㅌ 

- 이 소식을 들은 대우는 비상이 걸렸고 사태 파악을 위해 특별 팀을 꾸림

 

- 물론 그때 서울에 있던 김종부는 계약서 사인도 안 하고 버티기 시전 

- 그 와중에 입이 싼 고대 관계자는 김종부가 현대랑 만나고 있다고 신문 기자에게 입을 털었고 그 소식을 들은 현대는 기자가 호텔에 도착하기 전 다른 호텔로 이동함 

- 현대는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가명으로 서울 신라호텔 방을 잡고 다시 협상 테이블을 차림 

- 2차 협상에는 고대 관계자도 참석했고 오전에 시작한 협상은 밤 10시를 향해갔음 

- 결국 현대는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선수 대우가 담긴 “조건부” 가계약서에 김종부의 사인을 받아냄 

- 그리고 김종부는 집체 훈련(군사 정권 시절 대학생들 군사 교육)에 들어가며 외부와 연락이 끊기게 됨

 

- 이틀 후 현대는 영입 막타를 치기 위해 김종부 현대 입단한다는 기사를 흘림 

- 기사를 본 대우 관계자들은 개빡쳤고 기자들을 동원해 김종부는 현대가 아닌 대우로 간다는 기사를 뿌림 

- 이게 바로 현대그룹과 대우그룹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었음  

- 여기에 대우 관계자들은 대우그룹 법무팀을 소집하고 집체 훈련을 마친 김종부도 만남

- 무슨 일이 있었나 얘기를 듣고 고민하다 현대가 기사를 뿌린게 김종부가 사인한 “조건부” 가계약서 조항 중 하나에 위반된다며 계약 무효 내용 증명을 현대에 보냄 

- 여기에 현대와 계약은 고려대의 의견이며 나는 대우로 가고 싶다는 김종부 기자회견까지 가짐 

- 대우에 2연타를 맞은 현대는 현대는 현대차그룹 법무팀을 데려와 “우리 계약서 있는데? 법 대 법으로 가보자”며 맞불을 놓음 

- 이 두 그룹은 언론사를 동원해 언플까지 하며 여론 확보에 힘썼고 국민들은 김종부가 대우를 가야 한다, 현대로 가야 한다 싸우기 시작함 

 

- 생각보다 일이 커지자 고려대는 당황했고 사태 수습을 위한다며 회의를 열어 김종부를 축구부에서 제명, 일반 학생으로 전환시키며 대한축구협회에도 선수 등록 취소를 요청함 

- 역시나 이 사태가 부담된 대한축구협회는 고대의 김종부 제명에 따라 모든 선수 자격이 박탈되니 월드컵 대표팀에서도 제외한다고 발표함 

- 이 모든 일이 계약서에 사인하고 단 25일 만에 벌어짐  

 

- 근데 여기서 또 일이 터짐

- 김종부가 월드컵 대표팀에서 제외되니 현대냐? 대우냐?로 싸우던 국민들의 칼날이 축구협회와 고려대로 향함 

- 1986 멕시코 월드컵은 대한민국이 32년 만에 나가는 대회였기 때문 

- 또 김종부가 필요했던 대표팀 김정남 감독을 비롯해서 최고참급인 조광래, 허정무 등이 여론에 힘입어 김종부 구명 운동을 시작함 

- 제대로 역풍을 맞은 고려대와 축구협회는 이대로 가다간 우리 ㅈ된다 느끼고 김종부 제명을 월드컵 이후에 결정하겠다며 한발 물러섬 

- 김종부 제명 결정한지 1주일 만에 생긴 일들임

 

- 그렇게 김종부는 월드컵에 출전하여 불가리아전에서 한국 대표팀 월드컵 2호골 및 동점골을 기록하며 한국 대표팀에 월드컵 첫 승점을 선물함 

- 근데 이 득점이 김종부의 목을 더욱 조이는 계기가 됨 

- 세상 어떤 팀이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국가에 첫 승점을 선물한, 국민의 영웅이 된 유망주를 놓치고 싶겠음?  

 

- 김종부를 놓고 싸우는 현대와 대우의 전쟁은 월드컵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불을 붙기 시작함

 

- 성공적인 성인 무대 데뷔를 마치고 돌아온 김종부 앞에는 더 큰 암초들만 자리 잡고 있었음 

- 월드컵에서 활약한 김종부를 놓고 대우와 현대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본인들의 선수라 주장 

- 고려대 축구부의 제명도 결정되며 김종부는 평범한 체교과 학생으로 시간을 보내다 87년 가을 졸업을 맞이하며 축구 없이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냄 

 

- 졸업 후 김종부는 일단 본인이 가고 싶어하던 대우로 향했으나 현대와의 문제가 남아있어 정식 선수 등록을 할 수 없었고 개인 훈련만 하며 보냄   

 

- 이때 대우에서 먼저 수를 던짐 

- 그건 바로 일본 대표팀과 친선전 

- 대우는 숙적 일본을 상대로 김종부가 활약한다면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으리라 생각 

- 축구협회는 이 계획을 눈치채고 친선전 승인을 내주지 않았으나 대우에서 김종부를 절대 내보내지 않겠다 사정하여 김종부 출전 금지라는 조건을 걸고 경기를 허락함  

 

- 물론 이건 대우의 구라  

- 경기 허가를 받은 대우는 지역 언론을 통해 김종부가 일본전에 출전할 거라는 얘기를 솔솔 뿌리며 경기 홍보를 함 

- 이에 부산 시민은 김종부 구경 가자며 구덕을 가득 채우고 계속되는 경기에 김종부가 안 나오자 1만여 관중이 김종부 이름을 외침 

- 결국 대우는 관중의 요구에 못 이기는 척, 본인들이 의도한 대로 김종부를 내보냄 

- 이 소식을 들은 현대와 축구협회는 개빡쳤고 축구협회는 바로 이사회를 소집해 대우에게 벌금 천만원을 부과함 

- 근데 대우는 이 벌금 끝까지 안 냄 ㅋ  

 

-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음 

- 87년 다음 해는 바로 88 서울 올림픽이 열리고 김종부는 당시 88 올림픽을 위해 특별히 육성한 청소년 대표팀의 주축 선수였음(84년 청소년 월드컵 4강 신화) 

- 어떻게든 김종부를 복귀시켜야 했던 축구협회는 11월 5일 프로 선수 등록 규정을 개정하여 김종부도 등록할 수 있게 소급 적용까지 가능하다고 발표를 함 

- 이 소식을 듣자마자 대우는 11월 6일 김종부와 모든 서류를 준비해 선수 등록을 해버렸고, 가계약서 1장만 들고 있던 김종부 없는 현대는 그저 손 놓고 바라봐야만 했음  

 

- 그렇게 1년 6개월 만에 정식 선수가 된 김종부의 첫 상대는 바로... 현대였음  

 

- 11월 6일, 김종부 선수 등록 소식을 들은 현대는 축구협회를 비판하는 성명을 냄과 동시에 대우전을 준비 중인 선수단을 철수시키고 축구협회에 대우와의 경기 불참을 통보함

- 여기에 더해 현대는 11월 6일 저녁 그룹 임원 회의를 소집, 김종부 등록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를 하게 되고 

- 11월 7일 오전 현대는 팀 해체라는 초강수를 던짐 

- 역시나 7일 오전, 현대의 경기 불참에 대해 논의하려던 축구협회 이사회는 현대의 해체 소식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 긴급히 현대자동차 정세영 회장(정주영 회장 친동생)을 찾아 해체 결정만은 철회해달라 요청했으나 정회장은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다라 직접 답을 하며 축구협회를 압박함 

- 현대 해체 소식이 전해지자 축구계에서 축구협회에 모든 책임이 있다며 집행부 전원 사퇴까지 요구하기 시작했고 

- 현대의 해체 선언으로 사태는 매우 심각해지며 단순히 축구의 문제가 아닌 대우와 현대 그룹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짐  

 

- 이처럼 김종부 사태가 축구협회 선에서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자 정부까지 나서게 됨 

- 문체부 장관 주관으로 김종부 사태 해결 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는 청와대 교문수석과 축구협회 집행부, 개축 5구단 대표 모두 참석함 

- 문체부 장관이 직접 현대에 해체를 철회해달라 요청했으나 그룹 임원 회의를 통해 검토하겠다는 형식적인 대답만 돌아왔고 정부의 중재에도 김종부 사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며 시간이 흘러감  

 

- 결국 축구협회 집행부는 김종부 사태에 관한 책임을 지고자 회장과 이사진의 사퇴를 발표하고 

- 축구계에서도 하루빨리 사태를 수습하라는 요구가 이어지자 결국 대우와 현대가 아닌 제3의 팀으로 김종부를 보내자는 의견이 나오게 됨 

- 물론 대우와 현대는 이 계획에 반대했으나 2년 가까이 이어지는 소모전과 축구계 내분, 88 서울 올림픽을 위해 해피한 분위기를 연출하라는 정부의 압박 등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기엔 무리가 따랐고 

 

- 결국 김종부를 포철에 보내기로 양 팀의 합의 아닌 합의를 보며 현대 해체 철회는 50여일, 김종부 사태는 약 1년 8개월 만에 막을 내림

 

청춘fc에서 안정환이 말했던 “너무 잘해서 문제였지”라는 말에는 저 과정들이 함축되어있었을거라고....

 

출처 : 에펨코리아_킹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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