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축구화와 함께 한 화려한 축구인생
2013.04.03 11:47:52
 

[올댓부츠] 2002년 4강 신화의 주인공 김남일(36, 인천 유나이티드). 그라운드를 지배하는 그가 정작 축구화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사실이다.

‘그라운드의 터프가이’, ‘진공 청소기’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여전히 그라운드를 지배하고 있는 김남일. 그가 화려했던 축구인생을 돌아보며 축구화에 대한 철학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신었던 축구화가 기억나는가?
축구를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나이키, 아디다스는 꿈도 못 꿨다. 동네에 있는 체육사에서 파는 서경 축구화를 신었는데 그때 최고의 브랜드는 키카였다. 나이키, 아디다스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의 꿈은 키카를 신어보는 것이었다.

-프로에 입문해서는 어떤 축구화를 신었는지?
프로에 입문해서는 아디다스를 신었다. 대학 때부터 신었는데 한 선배님께서 아디다스에 계셔서 용품들을 무상으로 지원해주셨다. 축구화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확실한 것은 아디다스였다는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아디다스 프레데터를 신어서 화제가 됐는데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도 아디다스를 신었다. 그때는 정확히 기억이 난다. 프레데터를 신었다. 당시 지네딘 지단 등이 신어서 인기가 많았던 제품이었다. 블랙과 레드 그리고 화이트가 잘 조화됐었던 디자인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착화감은 어땠는지?
당시 착용했던 프레테터는 혁신적이었다. 스타일이 약간 뒤틀린 모양이어서 디자인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제품이다. 착화감도 괜찮았고 선수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제 발모양이 조금은 특이해서 약간 불편한 감도 있었다. 다른 선수들에게는 찬사를 받는 제품이었지만 저와는 약간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에는 축구화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아디다스 내에서도 저와 맞는 좋은 제품들이 많았는데 그냥 신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프레데터를 신었는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아디다스 프레데터를 신었다. 기능적인 면에서 발전했고 디자인도 매력적이었다. 아. 그 당시 엄청 가벼웠던 걸로 기억한다. 이때부터 프레데터가 더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2010년에는 다른 제품을 신고 나왔는데?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푸마를 신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 축구화를 제공해준 선배님께서 푸마로 이동하셨기 때문이다. 변화를 주고 싶은 시점에서 푸마 파라 멕시코를 신었다. 이 제품은 일본 제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실제로도 푸마 클래식 재팬 라인) 개인적으로 발에 잘 맞았고 직접 요구를 했다. 가벼웠고 착화감도 좋았다.

-최근에는 미드필더들이 선호하는 CTR360 마에스트리3를 신고 있는데?
최근에는 나이키 CTR360 마에스트리3 제품을 신고 있다. 일단은 가볍다. 편하고 발에 딱 맞았다. 패스를 할 때도 편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아무래도 이 제품이 미드필더들에게 맞는 축구화로 나왔기 때문에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제 발 모양이 이상해서 그런지 잘 늘어나고 모양이 바뀌어 한 축구화를 오래 못 신는다. 자주 바꾸는 스타일인데 여태까지 신었던 축구화 중에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볼을 찰 때 터치감이 우수하다. 아무래도 미세한 돌기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축구화에 대한 징크스는 없는지?
축구화에 대한 징크스는 없다. 러시아 있을 때 한 선수가 축구화 하나만으로 일 년 내내 신는 선수가 있었다. 축구를 정말 잘하는 선수였고 중심 선수였다. 그래서 느낀 것이 축구화와 경기력과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했고 징크스도 없다고 생각했다. 보급형 축구화를 신어도 경기력에는 이유가 없다. 실력의 문제일 뿐.(웃음)

-관리 노하우는?
관리 노하우는 없다. 사실 이전까지 축구화가 FG(천연잔디용), HG(맨땅용) 등으로 나눠지는지도 몰랐다. 최근 들어 알았다. 후배들이 스터드에 따라 잔디용과 맨땅용으로 나뉜다고 말해줘서 알았다. 그래서 발이 아팠던 것 같기도 하다. 상황에 맞게 신었어야 했는데 아무거나 신었으니 불편했던 것 같다. 전혀 몰랐다. 찬사를 받던 프레데터가 불편했던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사진=김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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