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의 최강자 프로스펙스
2010.10.26 17:19:15

 





지난 해 ‘조영증, 나이키 축구화의 선구자’ 칼럼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1980년대 초, 나이키와 프로스펙스가 등장하면서 국내 스포츠화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인지도 면에서는 미국 브랜드인 나이키가 한 수 위였지만 프로스펙스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프로스펙스는 오리지날 'made in KOREA'라는 특수성을 등에 업고 나이키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당시 테니스화, 농구화, 육상화 등에서는 나이키가 한 발 앞서 나갔지만 축구화만큼은 프로스펙스가 나이키를 앞질렀다. 당시만 하더라도 나이키는 유럽, 남미에서 조차 축구와는 별 상관 없는 브랜드로 인식이 돼 있었기 때문에 국내 선수들과 팬들은 나이키 축구화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갖질 않았다.



그 시기에 국내에서 나이키 축구화를 신고 뛴 선수는 미국 리그에서 활약하고 귀국한 럭키금성(현 FC서울) 소속의 조영증이 유일했다. 반면에 프로스펙스 축구화를 착용하는 선수들은 많았다. 1983년 10월 효창구장 인조잔디 포설 기념으로 아르헨티나 청소년 대표팀과 브라질 의 명문 클럽 플라멩구가 내한해 한국 청소년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가졌는데, 당시 한국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이 프로스팩스 인조 잔디용 축구화를 신고 뛰었고, 그 후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 일부도 프로스펙스 축구화를 신기 시작했다.



 





그 무렵 스타급 선수 가운데 대표적인 프로스펙스 축구화 애용자는 최순호였다. 최순호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 이어 본선에서도 프로스펙스 축구화를 착용했다. 당시 최순호는 조별 예선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통렬한 중거리슛을 성공시킨 바 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는 대표팀 선수들 3~4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프로스펙스 축구화를 신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도 최순호, 조민국 등이 프로스팩스를 착용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도 수비수 박경훈과 신예 스트라이커 황선홍이 프로스펙스 축구화를 신고 활약했다. 그러나 이후에 프로스펙스 축구화의 인기는 급격히 하락했고, 프로스펙스 측에서도 더 이상 질 좋은 선수용 축구화를 생산해 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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