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의 새로운 바람이 분다
2009.12.28 11:48:04


7일간의 여정에서 <올댓부츠>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전혀 알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 특수깔창의 세계였다. 사실 <올댓부츠>는 영국으로 떠나기 바로 전 경기력을 배가시키고, 부상을 방지하는 특수한 깔창을 제작하는 회사가 있고, 프랑스 국가대표 몇 명이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그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것이다.

특수깔창을 제작해준다는 ‘프로핏(PROFIT)’의 매장은 런던의 남쪽 부촌에 자리 잡고 있었다. 특수깔창 자체가 선진국 산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평균 소득이 높은 지역에 고객이 많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좁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밖으로 나오니 역시 숙소주변의 우울함과는 거리가 있는 품격 있는 주택가가 나타났다. 동행한 두사커 관계자는 “이게 무슨 부촌이에요?”라며 의혹을 표했지만, 다음날 토트넘 홋스퍼의 화이트하트레인을 취재차 방문했을 때 “어제 그곳이 부촌 맞네요”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주소를 보고 찾아간 매장이 폐쇄된 것이 아닌가! 속으로 ‘역시 이런 사업이 되겠어’라는 생각을 떠올리려는 찰나에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확장 이전이란다.

다시 몇 분여를 걸어 새 매장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매우 넓었다. 매장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점심때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몇 명의 손님이 의자에 앉아 자신의 발을 정밀 측정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취재진이라고 밝히자 사장이 직접 반갑게 악수를 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꽤 많은 사람이 찾는다. 특수깔창은 확실한 효과를 보장하기 때문에 운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며 “손님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종목은 스키와 골프이고 그다음으로 러닝”이라고 말했다. 축구는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스키와 골프는 개인 운동이기 때문에 직접 매장을 찾지만, 축구는 단체 운동이고 아무래도 전문적인 의료진이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매장을 찾는 일은 없는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기대했던 특수깔창의 존재감이 그렇게 크지 않아 조금 아쉬워하고 있는데, 희소식이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바로 프랑스였다. 발랑시엔에서 뛰는 남태희를 취재하기 위해 팀 훈련장을 방문했을 때 남태희가 특수깔창(프로핏 제품은 아니다)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태희의 에이전트가 말한 바로는 남태희의 발가락이 일반인보다 많이 길어서 그에 맞는 깔창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숙소로 들어와 더 조사를 해보니 이미 우리나라에도 프로핏을 비롯한 몇 개의 업체가 들어와 있으며, 국가대표팀 주치의를 맡은 의사들도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리해보면 특수깔창은 큰 의미에서 퍼스널라이징의 한 부분이고,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퍼스널라이징을 완성하는 최고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모습과 치수만 자신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인체’라는 발을 완벽하게 측정하고 그에 맞는 맞춤옷을 제작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직 국내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분야고, 관심도도 떨어지지만, 분명히 한국에도 1~2년 안에 이러한 바람이 몰아 닥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례가 없는 7일간의 유럽 축구화 유학 길에서 <올댓부츠>는 많은 것을 보고 또 느꼈다. 아주 보잘것없어 보이는 축구화라는 물건이 작게는 축구화 시장으로부터 크게는 문화까지 보여줄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부분을 보면 전체를 알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축구화는 곧 유럽 축구 문화였고, 축구 문화는 한 나라의 문화 흐름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아무도 시도한 역사가 없고, 일견 무모하게 보였던 유럽 축구화 기행의 결과물들이 절대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뜻을 두고 떠나면 길은 언젠가는 열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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