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축구화의 아버지, 김철 장인
2009.05.31 00:16:49


21세기는 소비가 미덕인 사회다. 고장 난 물건을 고쳐 쓰는 것은 이제 옛 이야기가 돼버렸다. 하지만, 물건을 고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가 있다. 게다가 수리를 뛰어넘어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장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축구화 수선 45년 경력을 자랑하는 장인 김철 씨다.

김철 장인이 축구화 수선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63년이다. 축구선수를 그만 둔 후 신발공장에 들어갔고, 그 인연으로 축구화 수선을 시작하게 됐다. “축구를 못하게 되니까 신발 공장에 들어가서 기술을 배운 거야. 그러다 동대문에 축구화 수선하는 사람을 봤어. 내 기술을 합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사람들의 입 소문을 탔고, 기술을 인정받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축구화 수선이 올해로 45년. 젊었던 그는 이제 장성한 아들을 둔 노인이 됐다.

못 고치는 건 없다
가게 안에는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축구화가 선반마다 가득 차 있었다. 색상과 종류도 여러 가지. 마치 독서광의 잘 정돈된 책장처럼 가지런히 축구화가 정리돼 있었다. “위기 같은 건 없어. 수선 양은 항상 비슷해. 봄, 가을에는 좀 많고, 겨울에는 좀 적지.” 그의 말대로 위기 따위는 없었다. 겨울에는 양이 적다는 말이 무색하게 인터뷰 도중에도 가게를 찾는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서울 시내에도 ‘축구화 수선’이란 간판을 내 건 가게는 많다. 그래도 사람들이 금성축구화를 찾는 까닭은 한 차원 다른 장인의 기술 때문이다. “축구화 수선 가게가 수십 개 정도가 아냐. 엄청나게 많아. 다들 자기가 최고라고 하는데 엉터리도 많아. 엉터리 같은 곳에서 수선한 걸 다시 들고 와서 수선해 달라는 경우도 많지. 아직 다들 좀 실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 이건 경력이거든. 수선은 사람 손이 들어가야 잘 되는 거야. 기계가 해주는 게 아니라니까. 기계는 입력된 대로 움직이는데 손하고 같을 수가 없지. 기술이 있어야 돼.”

김철 사장은 경력을 강조했지만 45년의 경력이 그를 장인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그는 완벽한 수선을 위해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나온 축구화의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어. 신제품이 나오면 어떤 원단과 약품이 쓰였는지 다 알아내야 돼. 그리고 신발마다 본(사람 발 모양의 형틀)이 다 달라. 그것도 체크해야지.”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축구화는 줄 잡아도 수십 종. 게다가 동호인들이 착용하고 있는 예전 모델까지 합치면 축구화의 종류는 거의 백여 종에 육박한다. 생산되는 종류가 많은 만큼 수선은 힘들어진다. 각 축구화는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 수선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못 고치는 축구화는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수선이 안 되는 건 없어. 오면 다 되고, 안 오면 안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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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갈이? 새로운 탄생!
축구화 수선이 그저 창갈이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철 사장의 가게에는 새 축구화도 많다. 길이가 맞지 않거나 발 볼이 맞지 않아 불편한 새 축구화는 김철 사장의 손을 거쳐 맞춤 축구화로 거듭난다. 프로축구 선수 중에서도 새 축구화를 받자마자 장인에게 보내는 단골고객이 많다. “윤정환이도 많이 왔고 (김)대의도 많이 왔지. 선수들은 발이 생명인데 잘 안 맞는 축구화를 신으면 안돼. 나한테 보내서 발에 꼭 맞게 고쳐달라는 거야.” 축구화 수선은 단순히 뜯어진 부분을 꼬매고 다 닳아버린 밑창을 교체해주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축구화를 만드는 것과 같다. “신발의 특성을 다 살려 줘야 해. 수리한다고 다 떼어버리면 안돼. 만들 때부터 특징이 있게 만들어진 거야. 택배로 오는 물건들은 어떻게 고쳐달라는 주문이 적혀있어. 축구화가 비싼데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근데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다 알아서 해주니까. 수선은 창만 갈아주는 게 아니야. 맞춤 구두랑 똑 같은 거야. 발에 잘 맞게 새로 만들어 주는 거지.”

“그렇게 오래 걸려요?” 축구화를 수선하러 온 손님이 수선하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말에 놀라서 묻는다. 장인이 웃으며 대답한다. “아저씨, 다시 만드는 거예요. 시간이 많이 들어가야 숙성이 돼서 예뻐져요. 수선 시간이 짧으면 발도 아프고 안 좋아요.” 최신 기계를 자랑하는 수선가게들은 1~2 시간에 축구화를 고쳐준다고 광고하고 있지만, 그는 제대로 수선하기 위해서 일주일 정도의 ‘숙성’기간을 갖는다. “수요일, 토요일. 수리된 축구화는 일주일에 두 번 나가지.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보면 돼. 숙성이 돼야 하거든. 접착제도 잘 붙고, 형태도 잘 고정되려면 시간이 필요해. 빨리 나간다고 좋은 게 아니야.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어.”

장인의 걱정
그라운드를 누비거나 선수들을 지도하진 않지만 그는 엄연한 축구인이다. 축구선수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는 축구를 즐기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긴 세월 동안 축구화 수선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축구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수선양이 너무 많아도 기분이 좋지 만은 않다. “신는 사람들이 가벼울 걸 찾으니까 만드는 회사측에서도 가볍게 만들 수 밖에 없는 거야. 가볍게 만들면 망가지기가 쉽거든. 그리고 요즘 안 좋은 소재를 쓰는 회사도 많아. 생산 공장은 죄다 중국에 있고. 그러면 좋은 축구화가 나오지 않아. 가격은 비싼데 말이지.” 그는 계속해서 입지를 잃어가는 국내 축구화의 현실에도 씁쓸해했다. “키카가 (양이) 많이 줄었어. 물론 쉽지 않은 것도 알아. 나 축구화 만들어 봤지만 쉬운 게 아니거든. 개발하는 데 돈이 엄청 많이 들거야.”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인터뷰 동안 장인은 축구화 수선에 대한 열정과 축구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그가 장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가니 옆으로 곧 철거될 동대문 운동장이 어렴풋이 보인다. 가게 옆에 버티고 섰던 동대문 운동장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장인에게 은퇴는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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